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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Sep 18. 2024

왜 불편하게 자?

고양이의 취향을 존중해.

눈을 왜 그렇게 떠!


시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더이상 제사를 지내시기 힘들어

내게 제사를 물려주셨다.

그렇게 혼자 제사를 모신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제사를 받아오면서 남편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했고 어른들은 그러라고 해주셨다. 4시간이 걸리는 귀성길과 그보다 더 걸리는 지옥의 귀경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멀미가 나는 것만 같다.


이동 없는 행복한 추석을 보낼 수 있는 것만도 제리를 위해 또 우리를 위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제리에게 명절은 그러니까 이상한 날들이다.

집사들이 다 집에 줄곧 있다는 사실만으로

낮잠은 급격히 줄어든다.

첫날은 거의 흥분상태였다가

시간이 갈수록 슬슬 적응해 나가는 식이다.

적응하면 곧 끝나 있다.

각 방에 제리 아지트가 있다.

안 방에는 베란다가 아지트다.

베란다에 녹색 고양이 전용 카펫도 그래서 깔아 두었다.

여기서는 아파트 놀이터 정원이 잘 내려다 보여서

냥플릭스(고양이들의 넷플릭스: 창문 밖에 이동하는 것들을 보는 일)가 따로 없다.

아들 방에는 창틀과 고양이 전용 상자가 아지트다.

주로 같은 냥플릭스인 창틀은 높게 자리 잡고 있어서

더 좋아하는 공간이다. 전용 상자는 말해 무엇하겠나.

고양이에게 상자는 최고의 공간이다.

좁으면 좁을수록 더 좋다.

왜 불편하게 자?

상자에 끼여서 자는 고양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자는 고양이에게 최적의 아지트이다.

사냥이 주 활동인 고양이의 습성을

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상자는 다른 동물이 들어올 가능성이 낮기에

작은 것이 최적이다.

그곳에서 몸을 구부려 적을 피하고

언제든지 튀어나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추위도 피할 수 있기에 최적의 아지트라 할 수 있다.

고양이는 뼈 사이사이 물렁뼈가 많기에

몸을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다.

그러기에 좁은 공간은

고양이에게 안정감을 주는 공간인 셈이다.

스트레스 해소에 탁월한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 애써 비싼 침대나 숨숨집보다

그걸 넣어 온 상자를 더 좋아하는

고양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집사만 만족하는 지출은 멈추길.

취향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예쁜 상자를 배송시키길 바란다. 이건 가격이 선물이다.

딸애 방에는 책장 꼭대기 공간과 책상 중간 틈새에 들어가거나 옷장 옆 헹거

사이 공간이 아지트다. 물론 예쁜 상자도 하나 있다.

이 각 공간을 돌아가며

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가며

잠든다.


한 번은 아들이 자꾸 제리가 자기 방에서 잔다고

툴툴 대는 거다. (좋으면서 툴툴대는 아들)

문 앞에서 밤새 운다나.(요즘 닫힌 문을 여는 노하우를 장착했다. 문 앞에서 열라고

고래고래 울어재낀 다. 그럼 내가 애들 방 문을 열어주는 식이다. 가끔 애들이 열어주거나)

문 열어주면 신나서 창틀에서 잔다는 거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새벽에 날 깨워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안방 베란다에 자고 있었는데

무슨 소린가.


이 무슨 제리 잠자리 배틀도 아니고 아들은 우기기를 시전하고

나는 못 이기는 척 그래 하고 물러난다.

결국 검증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나는 초저녁에는 딸애 방에서 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티브이를 시청하는 동안 딸애는 몇 번이나

제리 자는 모습을 보라고 불러댄다.


그리고 12시쯤 아들의 방 앞에 우는 제리를 목격했다.

사실이었다. 엥 내가 잘못 안 거구나.

그런데

아들이 잠들자 방을 나와

밥을 먹고

안방으로 향하는 제리를

보았다는 남편의 목격 증언으로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자는 공간마다 타임라인이 있었던 것이다.


9시쯤 딸애 방에서 자다 나와

밥을 먹고

12시 넘어 아들과 사냥 놀이

후 창틀에서 수면

2시쯤 아들이 잠들면

간단 요기 후 안 방 베란다에서 잠드는 순이었다.

아주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는 제리.

제리야 잠자리를 제발 좀 정해라.

여러 명 설레게 하지 말고.


모두 행복한 한가위 되셨길 바라고 수퍼문 보시고

꼭 소원 다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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