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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Apr 17. 2024

네 전 좀 예민한 사람입니다만,

쿨하지 못해 미안

낚기는 제리

어릴 때부터 좀 예민한 편이었다.

예민한 아이는 육아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네 남매의 경우 예민함은 묵살되기 마련이다. 정말로 다행히도 아이는 치이면서 터득하게 된다. 예민함은 방관되고 때로는 매도 부른다는 사실을. 무딘 척하며 예민함을 감추는 법을 터득한다. 그러나 억눌린 민감성은 가끔 터진다. 나는 내내 울보였다.


그 당시 포목점을 하셨던 부모님은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다. 그래서 애기를 방에 눕혀두고 가게를 보셨다. 지금처럼 애를 맡아 주는 곳은 없었기에 할아버지가 말 그대로 애를 보시기만 하셨다고 애는 배를 곯은 채 울다 지쳐 잠들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눈물이 헤픈 모양이라고 엄마는 본인 탓을 하고는 하셨다.


빈 방에서 울고 잠든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억을 못 해서 일지도 모른다. 요즘 그러면 학대라고 하겠지만, 그 시절은 다 그렇게 컸다. 지금처럼 아이에 대한 배려를 해 줄 만큼 여유롭지  못했기에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그 시절을 버틴 것이 때때로 대견하다.


좀 자라자 예민함은 피부에 닿는 것들에 향했다. 목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했다. 목도리와 목티는 입지 못했다. 지금은 고무줄 바지나 스판이 흔하지만 그때는 드물었다. 그래서  일 년 내내 체육복 바지를  입고 등교를 했을 정도였으니 어딘가 불편하면 못 견뎌했다. 지금도 옷의 소재에 예민해서 택에 적힌 부분에 집착이 있다.


또한 사람들의 말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는 데에도 민감했다. 게다가 그 감정에 길게 휘둘렸다. 그 묘한 꼬인 감정에 상처받고 또 상처받았더랬다. 반대로 그 감정이 담긴 말을 하고는 미안함에 못 견뎌하고는 했다. 후회하는 일이 너무 많아 괴로웠다. 상처받지 않는 것도 상처 주지 않는 것도 어렸을 때는 어려웠다.


나이가 들면서 좋았던 것은 예민함도 무뎌진다는 거였다. 이제 상처를 받았다는 걸 제법 잘 잊는 거다. 노하우가 생긴 건 아니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연륜으로 알게 되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남 탓하며 넘어가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그 예민함을 끌어낸 사건이 있었다.


요즘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는데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우리 동 앞에 있어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라 레깅스 차림으로 다니기 편했다. 그 위에 길게 엉덩이를 덮는 상의를 입는데  한 번은 운동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유치원정도 되는 쌍둥이를 데리고 주차장 비상구에서 시끄럽게 올라오던 애들 엄마가  내 옆을 지나며 나를 아래위로 훑는 시선이 느껴지고 이내 큰 소리로  "어마 바지도 안 입고 나왔나 봐 쯧"하며 혀를 찼다. 순간 나는 그곳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내가 뭘 들은 건가 멍했다. 누가 봐도 레깅스를 입고 상의로 엉덩이도 가렸건만.  

밖으로 나가는 뒤통수에 대고

'내가 벗든 입든 아니 대체 자기가 무슨 권리로 내 옷차림을 지적하는 거야. '  말해야 했는데...


사실 아무 말도 못 한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떠올려보니 애들 다 듣는 데에서  나이로 보아 많이 봐도 30대 후반 10살도 넘는 차이. 왜 대놓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 상대에게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근데 슬프게도 운동 나가면서 매번 그 순간이 떠오른다. 분노는 옅어졌지만 여전히 상처로 남았다. 


나이 들었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건 아니다. 나이 들면서  받는 상처도 있다. 나잇값을 해야 하고 그래서 치러야 할 대가들이 꽤 생겼다. 어른이라 참아야 하고 용서해야 할 것들은 늘었지만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이 가졌던 권위는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하다.   


씁쓸한 맘이지만 상처는 안 받기 어렵다. 예민한 내가 쿨해져야 하는 건데 과연 가능할까 그런 때가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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