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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an 24. 2023

느림의 미학

조급 해하지 말기

“뭘 하다 50이 됐냐.”

요 근래 우리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이에 질세라 엄마에게 “나도 뭘 하다가 24살이나 됐을까?” 하며 서로 신세한탄을 늘어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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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엇을 하다가 늘 32살인 것 같던 우리 엄마는 어느새 50살의 중년이 되었을까. 아직도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철부지 딸은 어여쁜 숙녀가 되었다. 어렸을 땐 눈 깜박하면 금방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크면 클수록 시간은 마치 손에 모래를 쥔 것 마냥 빠르게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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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 경제적 독립이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는 나는 꽉 찬 나이를 실감하고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한 마리 토끼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술수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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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일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일을 저지르는 선수였다. 당장 HSK 시험이 코앞인데 토익 문제집을 사려고 서점에 가거나 번역 수업을 결제하려던 나였다. 그러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하나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나였다. 이에 시작된 자기혐오와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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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수많은 계단에 올라야 했지만, 조급한 나머지 엘리베이터만 찾으러 다녔고 좁은 엘리베이터 안 속 나에 시야에 들어온 건 굳게 닫힌 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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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발끝의 힘으로 계단에 오르다 보면, 시원한 윗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힘들 때 잠시 앉아있거나, 너무 높다 싶으면 한 발짝 내려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보다 정상에 도착하는 데 시간은 더 걸렸지만 계단을 오르는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다음 계단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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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을 한 스푼 먹고 시작한 일은 늘 끝이 미약했다. 어떠한 일을 해도 2배는 더 힘이 들었으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나를 갈아먹었다. 그러나, 천천히 차분하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일을 마주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실력발휘는 물론 자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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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찬 나이에 괜스레 조급함이라는 파도에 떠밀려 육지로 내동댕이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도가 불어닥치면 양팔을 모아 파도 밑 깊숙이 내려가자. 철썩이던 파도의 굉음은 온데간데없고 고요함만이 남을 테니. 이따금 파도가 잔잔해진 뒤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가면 따사로운 햇살에 비쳐 반짝이는 모래알들이 나를 반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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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이 신조를 지키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가고 있다면, 그 길은 옳은 길이다. 남들과 다른 박자와 뛰어난 리듬이 그 노래를 독특한 곡으로 만든다.(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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