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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Jan 17. 2023

마법의 소라고동

내 소원을 들어줘

스폰지밥을 좋아한다.

어릴 땐 둘도 없는 밥친구였고 지금은 어릴 적 향수를 찾는 도구가 되었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 인상 깊었던 건 바로 "마법의 소라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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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갇힌 스폰지밥과 뚱이, 징징이는 우연히 그곳에서 마법의 소라고동을 발견한다. 스폰지밥은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고플 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사소한 것 마저 소라고동에게 질문한다. 소라고동 옆에 달린 줄을 한 번 당겼다 놓으니 그는 금세 답을 주었고 스폰지밥은 군말 없이 따랐다. (실제로 말을 잘 들은 스폰지밥과 뚱이에겐 좋은 효력이 발생했지만, 믿지 않고 무시했던 징징이에겐 한없이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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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내 고민을 전부 다 들어주고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려주는 마법의 소라고동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고민기관을 잠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온몸에 달라붙어 있던 번뇌를 집어삼켜주지 않을까? 구역질 날 정도의 끔찍한 두통을 미세한 지끈거림으로 바꿔주지 않을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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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고 예민한 성격을 가진 나에겐 사소한 거 하나가 골칫거리다.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할 수 있고(정말 유난이긴 하다.) 답답하다며 혀를 찰 것이다. 적당히를 모르고 도가 지나칠 때가 꽤 많기 때문이다. 이런 성격을 애써 부정해 왔지만,  MBTI만 해도 INFJ인 나로서, "생각이 많다."와는 땔래야 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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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더욱이 마법의 소라고동이 간절하다.

물음표가 마침표가 되는 마법을 부리며,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나에게 길잡이가 돼주는 게 분명했기에.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어도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다 들어주는 소라고동.


절친한 친구, 심지어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소라고동.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소라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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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를 거닐다 모래사장에서 반짝이는 소라껍데기를 주었다. 손으로 모래를 탈탈 털어낸 뒤, 곧바로 귀에 가져다 댄다. 차가운 소라의 온도가 양 뺨에 전해지고 천천히 눈을 감은 후 얼굴로 바람을 맞는다. 귀에서는 바다의 연주소리가 들린다.

“크레센도 에 디미누엔도”

(점점 세게, 그리고 점점 여리게)

바다는 이 박자를 반복하며 연주한다.

이내 내 마음도 그의 박자에 따라 맞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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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줘.

우리 가족은 아프지 않고 내내 행복할 거야, 그렇지?

책과 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지속할 수 있게 도와줘.

자기비판과 너무 많은 생각을 줄일 순 없을까?

강단 있지만, 넓은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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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마법의 소라고동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로 색을 입혀 무수히 많은 나의 생각과  꿈들을 나열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소라고동의 마법인가?

그렇다면 이 종이에 불을 붙여 훨훨 날아가도록 태워버려야 할까. 꾹꾹 눌러 적음을 반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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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행위가 쌓여서 언젠간 내 소원이 마법의 소라고동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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