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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Apr 15. 2023

일본마트 도장 깨기

이대로 굶을 순 없어

5일 후 돌아오는 언니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일본에서 지내면서 가장 힘든 건 언어였기 때문에 그나마 진입장벽이 낮은 편의점만을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녔고, 마침 언니 집에서 부터 가로질러 나아가다 보면 한쪽에는 세븐일레븐이, 한쪽에는 패밀리마트가 자리 잡고 있어 혼자인 내가 입에 풀칠하기엔 더없이 완벽한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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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 안에는 항상 같은 메뉴인 우동, 주먹밥, 음료수를 차례대로 담는다. 당연하게도 며칠이나 같은 음식을 먹다 보니 이내 물리기 시작했고 특히, 저녁 식사 후 엄마가 챙겨주는 과일을 먹는 게 의식처럼 여겼던지라 목구멍을 상큼하게 적셔줄 수 있는 비타민이 필요했다. 문득 언니와 헤어지기 전 흘려들었던 말.

"현아야, 여기 마트도 있으니까, 한 번 가봐. 맨날 편의점만 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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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이 지도맵을 열었다. 검색창에 마트를 입력하고 이리저리 뒤지던 중 눈에 띈 "My Basekt".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던 작은 동네 마트. 가까운 게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대충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집을 나섰다. 오후 5시만 되면 울리는 차임벨을 배경음악 삼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사람구경, 동네구경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신호등을 건너 지도가 알려주는 방향에 따라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니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마트. 긴장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눈치를 살피며 마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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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 편의점처럼 조금 해 보이던 마트였지만 의외로 들어가 보니 여러 종류의 과일들과 음료, 갖가지 식재료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정리되어 있는 보니 놀라움과 설렘이 공존했고 나는 홀린 듯 장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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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으면서 가장 생각나고 먹고 싶었던 치킨. 한국에서는 손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일본에서 한인타운을 제외하고 치킨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지라 그나마 비슷한 치킨 가라아게를 집어 들었다. 얼마 만에 먹는 고기인가! 옆에 보이는 신선한 초밥까지. 그렇게 신나게 돌아다니며 일본마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소중한 나의 저녁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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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 모습을 뒤로한 채 서서히 엄습해 오는 이 불안감. 우려하고 또 우려되는 바로 결제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분명 일본인인 줄 알고 일본어로 말을 걸어올 것. 그럼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 순번이 오기 전 머릿속으로 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마친 뒤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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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휘몰아치는 일본어. 곤란한 표정으로 어찌할지 몰라 잠시 뜸을 들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눈치". 직원의 말투와 행동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고, 이내 음식을 담을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는 듯 해 재빠르게 어깨에 메고 있는 장바구니를 흔들었다. 다행히 내 예상은 들어맞았고 한 차례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짤랑거리는 동전들을 지갑에서 꺼내 계산을 마친 후 나의 첫 일본마트 도전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마트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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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된 편의점 음식보다는 조금이나마 신선하고 정겨운 마트로 점차 발길을 돌렸고 하루 중 오후 5시 차임벨이 울릴 때면 어느새 장 보는 시간으로 계획을 잡아가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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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을 같은 마트만 가다 보니 조금 더 멀리 위치한 다른 마트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걸어서 15분에 위치한 마트부터 조금 더 걸어 30분에 위치한 마트까지. 동네마트 하나하나 도장 깨기에 나섰다. 확실히 큰 마트에는 북적이는 사람만큼 다양한 식자재도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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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떠 있을 땐 가족의 든든한 한 끼를 위해 장을 보시는 주부님들과 할머니들이 주로 보이는 반면, 달이 모습을 비추니 퇴근 후 마트에 들러 하루의 묵은 때를 벗겨줄 맥주 한 캔과 안주거리를 사가는 직장인들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마트를 돌아다니는 건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을 바로 눈앞에서 보다 자세하고 깊게 빠져들기 충분한 장소였다.  

마트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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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스레 나도 그들을 따라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어 집으로 향했다. 점점 다채롭게 칠해지는 휴식기에 만족감을 내비치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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