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일본의 기억

- 제1부 홋카이도로 가는 길

by 세상의 창

[제6화] 희미한 일본의 기억 – ‘오! 필승 코리아’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일본은 벤치마킹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종합상사맨으로서는 언제나 경쟁자였다. ‘일본을 넘어야 한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폭풍 앞에서도 일본 종합상사는 늘 우리의 경쟁 상대였다.


이란 테헤란 지사에 발령받고 출국에 앞서 인사드리려 갔을 때 E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중동 지역에서 사업할 때 지켜야 할 마음가짐 3가지”

– 중동에 발령받아 나간 일본 종합상사 직원들이 명심하는 금언(金言) 같은 것이란다.


‘焦らず 초조해하지 마라’

‘慌てず 서두르지 마라’

‘諦めず 결코 포기하지 마라’


나는 업무수첩에 이걸 ‘3 No!’(혹은 ‘3아!’, 'A-se-ra-zu, A-..., A-...')라고 꾹꾹 눌러 적었다.

그리고 지사 생활을 하는 내내 꺼내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조선 분야 e-비즈니스>

남아공 지사에서 귀국하던 해는 우리나라에 인터넷 비즈니스, 즉 e-비즈니스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월드와이드웹(WWW)의 등장으로 본격적으로 인터넷의 대중화, 상용화가 시작되더니 기업 활동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그때, 인터넷에 기반한 e-비즈니스가 기존의 오프라인 영업을 삼킬 것만 같았다.


나는 도저히 인터넷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던 조선 관련 영업 분야에도 e-비즈니스가 가능할 것 같은 예감에 선박 영업에 e-비즈니스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소 홍보에서부터 해운. 조선 관련 정보제공, 선박 신조 및 수리 인콰이어리 개발, 선박용선, 중고선 매매, 벙커링 등 트레이딩 전 프로세스를, 인터넷을 통해 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때까지 선박 영업은 오프라인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선주사나 거래선과의 교신은 우편 서한으로 주로 하던 시절이었고 또한 텔렉스를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져다줄 엄청난 변화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나는 귀국하던 해부터 e-비즈니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준비를 해오다가 회사 경영진을 설득하여 2000년도에 해운 및 조선 관련 e-마켓플레이스(e-Marketplace)를 운영하던 일본의 모 종합상사와 양해각서(OU)를 교환하고 지분 출자와 공동 마케팅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는 등 본격적인 시장 선점에 나섰던 기억이 난다.


<2002 월드컵 유치 활동>

사실이지 상사맨인 나는 수출 전선 여러 곳에서 일본과 부딪힌 기억이 난다.

그러나 ‘2002 월드컵 유치’만큼 치열하게 경쟁한 적은 없다.


‘2002 월드컵 유치’에 대해서는 이미 나의 브런치북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어느 보통 사람의 이야기] [제5화] <아! 2002 월드컵 - 2002 월드컵 유치 활동> 편에서 서술한 바 있으므로 아래 URL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98e6fc1362dd419/180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2002 월드컵’은 우여곡절 끝에 한일 공동 개최로 싱겁게 결론이 났지만, 2002년 한일 공동 개최로 성공리에 치러졌고, 한국은 4강 신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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