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
방금 나는 어느 106세 할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100년이나 살다니, 나는 도무지 그 숫자가 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백 세라는 것은 어쩌면 축복받을 일이며 경탄할 일이며 슬픈 일이기도 하다. 백 세가 될 때까지 본 풍경, 사랑, 경험 등이 모두 죽고나서 한 순간에 와르르 쏟아진다면 너무 아까울 것같다.
백 세가 되어본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을 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다." 이 구절을 듣고 나는 자기 사랑이나 자기 만족을 배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은 우리가 백 세까지 산다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딱 가져가야할 것들만 챙겨야겠다는 경각심이었다. 우리는 삶에서 챙기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챙기는 것같다. '나'를 챙기겠답시고 하는 일들은 모두 '한다'에서 '저지르다'로 바뀌기 십상이고 나도 모르는데 남부터 알려고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장수할 것이고 우리 모두 인생의 끄트머리에서는 이 모든 자잘한 일들을 다 기억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나무들도 겨울에는 낙엽을 와장창 떨어뜨리며 한용운이 말한 '수직의 파문'을 일으키는데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부러지기 쉬운 가지인가.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쌓아놓은 모든 것이 다 우르르 쏟아질지 모른다. 직업은 당연하고, 학업은 마치 먼지 한톨처럼 쏟아지고 내년으로 미루어둔 운동과 토익 시험 준비는 물거품보다 더 빨리 꺼진다. 남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너와 내가 나뉜다. 내가 남길 것과 당신이 남길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아니, 다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백 세가 되었을 때 즈음에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왔을 테고 얻은 가지나 뿌리도 다르고 흔들리는 낙엽의 모양새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남기느냐다.
사람들은 때때로 무성한 나뭇잎에서 가지를 보지 못하고 다들 무성하고 풍성하거니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가지가 있는 줄 안다. 당장 고등학교 교실에 벌컥 들어가 교탁에서 아이들을 찬찬히 훑어보라. 학생들은 모두 똑닮은 교과서에 눈을 붙이고 앉아 똑같은 머리의 잎사귀를 서로 무성히 펼쳐놓고 악을 쓰고 기를 쓴다. 그런데 이들의 장래희망은 모두 제각기 다르다. 그리고 다시 그 교실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아라. 수능을 치는 것은 많아봤자 이년 뒤이다. 백 년 뒤를 생각해보아라. 교탁은 이미 먼지로 돌아갈 것이고 여기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금과 몰라보게 형체가 달라져있을 것이고 마침내 모두 인생의 쓰린 겨울이 오면, 다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것이다. 그때에 아이들이 남긴 가지는 지금과 똑같을까.
나는 이 글에서 절대로 미래를 보자 아니면 앞을 내다 보자라는 그런 무책임하고 현학적인 말은 하기 싫다. 사실 이 말들은 모두가 아는 말이지 않은가. 다만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가지를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서 나뭇잎만 열심히 매만지는 농부들의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