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 프란츠 카프카
변신의 작가로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의 '성'을 드디어 읽어보았습니다. 소송이라는 작품으로 느꼈던 비슷한 느낌을 다시 받게 되었는데요. 그 모호함, 현실인듯 아닌듯한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까지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역시 주인공 이름도 소송과 같은 'K' 입니다.
K가 도착한 때는 늦은 저녁 이었다. 마을은 눈 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 성이 있는 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와 어둠이 산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곳에 쿤 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아주 희미한 불빛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 P7
K는 토지 측량사라는 신분으로 성의 부름을 받아 한 마을에 오게 되는데요. 그는 자신을 부른 성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성으로 접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성의 문은 굳게 닫혀있고, 성과 관련된 사람들 조차 만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됩니다. 그렇게 그는 성의 신부름꾼 바르나바스, 성의 고위 관리 클람의 애인 프리다 등등의 인물과 엮이지만 그 관계 역시 성과의 접촉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성이라는 길고 어려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성'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 '성'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진 명목, 실체, 진실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는데요. 우리는 세상의 모든것들을 대충이라고 알고있고, 생각하며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의 실체, 진실은 숨겨져 있으며, 겉으로 나타난 현상들만을 보며 그것이 진실인양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모호하게 풍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 뿐이다. 전설, 신화,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오직 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침을 먹기도 전에 불가능한 일을 여섯가지나 믿어버릴 수 있다는데에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원숭이를 설득해 지금 하나의 바나나를 준다면 천국에서 무한히 많은 바나나를 갖게 될거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극게 왜 중요한가? 허구는 위험한 오해를 부르거나 주의를 흩뜨릴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 창세기,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들을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 현대 국가, 중세 사회, 고대 도시, 원시부족 모두 그렇다. 인류가 공유하는 상상 밖에서는 우주의 신도, 국가도, 돈도, 인권도, 법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불 주위에 모여 함께 춤을 춤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은 현대 사회제도들이 정확히 그런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54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거에요. 내가 믿고 있는 것들, 다 진짜야? 우리가 이야기하는 보수와 진보,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유명 인플루언서들의 꾸며진 모습들 등등 보여지는대로 믿는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실체가 아닌 우리에게 주입된 겉모습 환상들만 보면서 그것이 진실로 쉽게 믿어버린다는 것이죠. 책 속에서도 프리다의 존재를 통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녀는 사실 가치없는 교활한 여자일 뿐이지만, 성의 영향력을 이용하고 치밀한 계략을 통해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모두가 그녀를 아릅답고 매력적인 여자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반명 아멜리아는 성의 관리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집안 식구 전체가 멸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구요.
모든 것은 성에서 비롯되니까요. -P284
모든 것은 성에서 비롯된다는 올가의 말이 여운이 남는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쉽게 예를 들어 보면, 행복이 조건을 이야기 할때 돈, 권력, 명예등등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돈 많은 재벌, 연예인, 수백억 자산가가 되면 행복해 질까요? 그리고 지금 그 사람들이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쉽게 그 조건들의 행복의 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행복을 위해 위에서 말한 조건들(돈, 권력, 명예)을 여전히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에요.
당신이 모든 점에서 착각했다는 것, 당신의 가정이나 희망, 그리고 클람에 대한 당신의 생각 또는 나와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한 당신의 상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면, 그때는 정말 지옥이 시작 된다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진실이 아닌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될 수 있다는 거에요. 물론 그 실체는 K가 그랬듯 성에 다가가는 것, 즉 진실은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삶을 살며 인생의 진짜 가치있고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거에요.
사라져가는 이 실낱같은 희망, 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희망이 그래도 당신의 유일한 희망인걸요.-P161
변신, 소송에 이어 카프카의 책을 3번째 읽어보았는데요,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의 삶을 딱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는 거에요. 바로 '삶의 부조리함'이죠. 카프카는 살면서 부조리함을 뼛속 깊숙히 느끼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조금 어렵지만 소설로 표현해냈고, 우리에게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이라는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리뷰 했지만, 이 책은 정말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성이란 어떤 의미일지, 나에게 성이란 어떤 것들이 있을지..등등을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거에요.
삶은 해답없는 질문이지만, 그래도 그 질문의 위엄성과 중요성을 믿기로 하자. < 테너시 윌리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