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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민경 Dec 31. 2022

사랑은 권태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것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마르그리트 뒤라스

얼마 전 사내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결혼 1년 권태기'라며 오랜 연애 후, 결혼한지 1년인데 권태기가 왔다고...

상대방의 모든 행동이 미워보이고 퇴근하고 집에가면 말하기도 싫고 부정적인 것만 떠오른다고,

다른 분들은 어떠냐...어떻게 극복했냐...라고 말이죠.


대다수의 우리들이 결혼이란 완벽한 사랑의 결실이고, 결혼 후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스토리를 믿고 싶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일상을 함께 하면서 수없이 부딪히고 무뎌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권태는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해요...권태가 시작되면..사랑에 대한 의심부터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사람을 사랑하긴 했었나?! 라고 말이죠..그렇게 의심에 의심을 하며 이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지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겠다며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구요..;; 


실제 며칠 전 회의가 끝나고 동료들과 잡담을 하는 시간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나라 기혼자중 약 24%가 외도의 경험이 있고, 월급이 700만원 이상인 경우에는 52%가 외도를 한다는 기사가 있다는 거죠. 같은 회의실에 동료가 7명이었는데 그 중 30%라면, 우리 중에도 약 2~3명은 외도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놀랍다며 웃어넘겼었는데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권태기로 고민하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하잖아요.. 이럴 때 현재의 소중한 관계를 망쳐버리기 전에.. 이렇게 사랑과 권태에 대해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어요.


일단 민트색의 책이 너무 산뜻하고 예뻐서 소장하고 싶으실 거에요.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시원하고 반짝거리는 표지의 느낌과는 대조적이에요. 찌는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폐쇄적인 바닷가 마을이 배경입니다. 그 마을에 다섯 친구들이 함께 휴가를 보내러 오는데요. 자크-사라 부부, 루디-지나 부부, 독신 다이아나 입니다.


산속의 무더위는 절정에 달했다. 만물이 죽은듯 정지되었다. 오직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둔중한 파도 소리와 소귀나무 열매 주변을 날아다니는 벌들의 요란한 붕붕거림만 들려왔다. 대기 중엔 탄내와 달콤한 꽃향기가 동시에 감돌았다. 그것은 어마어마하게 달달한 음식 냄새처럼 공기를 끈적거리게 하는 냄새였다.-P2114



여름 날 바닷가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읽으며, 마치 제가 휴가를 간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여름에 휴가를 못가신 분들이 읽으면 더 공감되실 것 같아요. 책에서 묘사하는 더위를 상상하며, 그들이 마시는 캄파리 대신 맥주 한캔을 마시고,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수영을 하는 듯한 느낌 말이죠. 휴가도 못가고;; 한여름에 읽어서인지 정말 공감되더라구요. ㅎㅎ 대체휴가 독서로 딱입니다. ㅎㅎ



어쩌면 오래된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악의적으로 만드는 건지도 몰라. 위대한 사랑의 황금 감옥 말이야. 사랑보다 우리를 더 옥죄는 감옥은 없지. 그렇게 오랜 세월 갇혀 있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사람까지 악의적인 사람이 돼 버려."-P295



위대한 사랑의 황금 감옥

자크-사라 부부, 루디-지나 부부는 평범한 우리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인데요. 사랑해서 결혼하고 오랜시간 서로 익숙해지면서 시들시들해진 관계...맞아요. 그들은 서로에게 권태감을 느끼고 있어요. 이 책에서 찌는듯하게 묘사된 무더위가 짜증을 유발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권태의 느낌을 상징하는 것 같았어요. 서로에게 권태감을 느끼는 자크-사라 부부 앞에 사라에게 호감을 보이는 '장'이라는 남자가 등장을 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일찌감치 권태감을 느낀 자크는 그동안 바람을 몇 번이나 피워왔지만 사라는 눈감아 줬거든요. 그렇게 서로의 관계와 감정들이 복잡하게 꼬여만 갑니다. 사라를 잃기 싫었던 자크는 자연스럽게 장과 사라를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으로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보러가자며 여행을 제안해요. 하지만 생각이 많은 사라는 거절했고, 자크는 사라의 고민이 짜증나기만 하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떤 결정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는데요. 그러던 중 사라는 루디와 대화를 하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 그는 강물을 마주한채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게 사랑이야.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P306



사랑은 권태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것

그렇게 사라는 새로운 사랑 대신 자크를 선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권태기는 '사랑이 식은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작가는 책을 통해 '사랑이란 것은 권태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다'..라고 정의 합니다. 사실 맞아요. 사랑은 항상 설레고 좋을것만 같지만 늘 그렇지 않았잖아요? 너무 좋아하면 그만큼 이별의 아픔이 커지게 되고,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결국 권태기를 맞이하듯이 말이죠. 결혼해도 상대방이 나에게 영원히 설렜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사실 어렵잖아요.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을 같이 끌어안듯,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와닿으며, 현재 나의 관계와 사랑에 대한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생각의 흐름이,  권태기다. →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 이혼 혹은 졸혼을 이야기 하잖아요. 하지만 어떠한 사랑에도 늘 권태라는 그림자가 숨어있게 마련입니다. 모든 것은 양면성이 존재하듯이요. 결국 진짜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일 테구요. 어떤 관계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의 결점을 끌어안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랑을 배울 수 있었어요.


살면서 주위에서, 영화에서, 책에서 목격하는 로맨스의 영향으로 관계란 마법과도 같아야 한다고 믿게 된 것뿐이다. 우리는 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괜찮은 상대를 만나면 그렇게 될 거라 믿는다. 안타깝게도 동화 곳 결말은 현실보다 이상에 가깝다. 이상주의자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삶은 골치 아프고 복잡하며 애매모호하다.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나쁜 사람도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도 나쁜 일을 저지른다. 우리의 일, 가족, 자녀, 친구 모두 그들만의 결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상대도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조차 흠이 있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나의 관계가 지닌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관계가 불완전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사랑에 관한 오해 - 개리 르완도스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한 사람, 즉 나의 배우자 혹은 연인이 나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바로 관계 포트폴리오가 필요한데요. 한 사람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친구, 동료 등 다른 관계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관계 다양화를 해야하는 것이죠. 그렇게 나의 배우자 혹은 연인이 나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 줄 거라는 기대를 버리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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