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길 May 04. 2024

나만의 공간; 버스 뒷자리

아늑한 공간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학원은 일주일 중에 토요일에 딱 한번만 가면 된다. 평일을 기숙사에서 보내야하는 나에게 딱 안성맞춤인 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평일 동안은 무엇을 하느냐, 학원에서 공부하라고 내준 숙제를 평일 동안에 하고, 숙제를 꼼꼼히 하였는지를 토요일에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다.


 오늘은 중간고사 이후로 처음으로 가는 날이다. 학원에 도착하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의자에 거의 앉자마자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이번 시험에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다들 그런 경험은 한번 쯤 있을 것이다. 공부를 더 해봐야 맞출 수 없는 문제들, 나는 이미 시험 공부는 완벽하다면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했다. 하지만 시험 당일날 너무나 편안 마음가짐으로 보다보니 긴장감이 전혀 없다시피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는, 해서는 안될 실수로 문제를 틀렸다. 틀려서는 안될 문제를 틀려버린 것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것이, 시험 당일 날의 나의 태도 하나 때문에 다 날라가버린 셈이었다. 나는 억울하다고 호소 하고 싶었다. 내가 공부를 덜 한게 아니라고, 실전에 임하는 마음가짐 때문이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허나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나보고 공부를 '덜'했기에 틀렸다고 했다.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다면 나는 반론을 미친 듯이 쏟아부었을 것이었다.


 주변의 말들, 나를 부정하는 말들은 그냥 무시하기로 선택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원에 도착한 것이다. 학원 선생님과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을 때, 학원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이녀석아, 실수를 이렇게 하면 어떡하니, 너가 틀릴 문제가 아니잖아. 너가 시험에 임할 때 너무 편안한 마음이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좀 긴장좀 하면서 시험을 봐야지. 너가 공부한 것들을 5~6등급 애들이나 할 실수를 해버려서 날리면 어떡하냐"


 난 솔직히 이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나에 대해 그 무엇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한 듯한 말이었다. 나보다 아래에 있는 놈들은 나보고 공부를 덜했기에 그렇다고, 내게 세뇌를 하였지만, 학원 선생님은 역시 전문가였을까, 나의 학업에 관해 제대로 분석하고 계셨나보다. 나는 학원 선생님이 나를 보고 하신 말씀에, 내 억울함이 대신 호소 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공부를 절대 안한게 아니라고, 했다고, 이런 실수를 한 것이 부끄럽고, 중딩도 하지 않을 실수라는 거 잘 알고 있는데, 왜 나보고 공부를 덜했다고 하는 것이냐고. 이 모든 억울함이 학원 선생님의 나에 관한 말에 의해 모두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참고로 내가 틀린 문제는 어떤 것이었나면, 보기의 단어를 이용하여 영작하는 서술형 문제였다. 보기의 단어 중 expect가 있었고, 이 단어의 어형을 변화하여 주어 자리에 명사로, expectation이라고 적었어야 했다. Expect를 expectation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은, 5등급 따리 아이들도 알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생각 없이 주어 자리에 expect라고 적어버렸고, 그렇게 서술형 문제의 부분점수도 없이 문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이것을 가지고 누가 공부를 덜했다고 하겠는가? 당연히 내가 공부를 덜 한것이 아니라 시험을 볼 때의 나의 실전력이 문제였던 것이다.


 학원 선생님은 나의 이런 마음을 잘 알고 계시기에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었다. 그저 이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의해 이 사실을 부정당하며, 내 노력도 함께 부정당하고 있었지만, 학원 선생님이 나를 깨우쳐 주셨다. 내 주관을 가지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깨우침. 매일 나는 내 소신껏 행동하자고 생각하지만, 간혹 그러디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 나를 깨우쳐 주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고, 이번에 그 존재는 학원 선생님이셨다.


 학원에서 나오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나의 억울함도 다 호소하였고, 나는 그대로 학원 근처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점에서 나와 같은 기숙사 방을 쓰는 3학년 선배를 만났다. 무척이나 반가웠다. 안그래도 학원 일로 기분이 좀 나아지던 참이었는데, 아는 사람 만나는 게 이리 반가울 수가, 나는 서점에서 선배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갈까마귀 살인사건, 이니미니,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이렇게 3가지의 책을 구매하고 나왔다. 그리고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탔고, 그 버스에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후딱 쓰자는 목표를 가지고 썼기 때문에, 곧 내릴 예정인 나는 여기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미술에 크록키였나, 순식간에 그림을 그리는 그런 종류가 있듯, 나도 이런 스피드한 글쓰기를 좋아한다. 어쨌든 모두 사소한 행복을 챙기시길

작가의 이전글 연인 중개 시스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