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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길 May 08. 2024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소크라테스-

 수학 일타강사인 정승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거 다 자기가 공부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야, 깊이 파고들어서 보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정승제라는 인물은 남들과 다를 것 없던 나에게 공부라는 새로운 길을 인도해 준 사람이다. 이 사람의 쓴소리를 난 참 좋아한다. 틀린 말이 하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며, 내 인생의 골칫거리들은 정승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 조언이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위에 큰 따옴표안에 적혀 있는 말이다.


 최근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을 읽었다.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아마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이 법정 재판 과정에서의 소크라테스의 1차, 2차, 3차 이렇게 총 3번에 걸친 변론을 서술해놓은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수많은 명언들 중에서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소크라테스의 1차 변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명언이 1차 변론에서 나온 말은 아니지만, 1차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바가 명언과 깊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하며 법정에 섰는데,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타락시킨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설령 타락시켰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가 아니며,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해악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는 지혜가 없다고 한다. 즉,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카이레폰이라는 인물이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구하며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거기에서 신은 없다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신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혜롭다고 소문 난 사람과 대화를 해본다면, 신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지혜롭다고 소문난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해당 대화에서 하나를 깨달았다고 한다.


 "지혜롭다고 소문난 사람을 깊이 파고드니,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며 같은 느낌을 지속해서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신의 말을 드디어 이해했다.


 "아, 내가 지식이 더 많기에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고, 알지 못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더 지혜로운 것이구나"


 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만을, 니가 알고 있는 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다녔기에 많은 미움을 샀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행동과 경험에서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닐까? 이건 추측할 필요도 없이 사실 맞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그 말만 들었을 때는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라니,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가 모르는 부분을 모른다는 것 그 자체를 알라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 것일까?"

 라는 질문에 휩쌓여 있었다. 그러고 나서 책을 읽고 나니, 가장 먼저 말했던 정승제의 쓴소리가 떠올랐다. 정승제의 말과 소크라테스의 말의 공통점은, 자기가 뭘 좀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을 깊이 파고보니 사실 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는 점이었다. 정승제의 말을 떠올리며,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안나온다는 친구들이라는 수많은 예시를 떠올리며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장 나만 봐도 사실 뭘 모르는 놈이 맞다.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난 평소에 스스로 분명 모의고사 영어에 대해서 2등급 이상은 될 실력을, 지식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그닥이었다. 그러고는 그날 컨디션이 문제였다느니 등등의 변명으로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이것을 떠올리니, 나도 참 자만에 빠져있던 사람인 것 같았다. 무지를 아는 것이 앎의 시작이라.... 나는 아마 영어에 관해서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그 부분을 깊이 파고 든다면 나의 "무지"가 들어났을 것이다. 허나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스스로 그 부분을 깊이 파고 들었고, 내가 영어에 관해 무지라는 점을 인정했다.

 내가 여기서 부정을 한다면,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했던 무지가 들어난 많은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소크라테스가 깨달은 지혜로움에 가까워 지기 위해선 나의 무지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무지라는 것에 간해서는 현우진이라는 학생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학 일타강사도 말한 적이 있다.


 "애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아는 것만 공부해, 아는 것만 점검한다니까? 그러고서는 성적이 안오른다 이러는데, 모르는 걸 공부해야 실력이 오르는 거야. 모르는 걸 공부하라고"


 주변에서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라고 일깨워주는 사람은 무척이나 많다. 내가 예시로 든 정승제나 현우진도 그렇고, 소크라테스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의 말을 이해한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말을 전하며 일깨워 줄 것이다.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당연한 사실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모르는 걸 알아야 그걸 공부해가면서 알가기를 시작하니까. 하지만 이 사실은 마치 사람의 등 같은 존재다. 가장 가깝지만 볼 수 없다. 누군가가 등에 대해 알려주던가, 혹은 거울로 등을 볼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이, 누군가가 일깨워주거나, 혼자 고심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무지를 아는 것이 앎의 시작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착각이라는 놈도 참 무서운 놈이다. 가장 가까우면서 알 수 없는 녀석.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내용에서 뭔가 이상함이 느껴진다면 그냥 모른다고 치부해 버려보자.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자면 어차피 우리는 뭘 알아봐야 신의 입장에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겨우 사소한 거 하나에 자존심을 살리고, 무지를 모를 바에 나는 그냥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해버리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줄 것이다.


 "니가 아는 건 아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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