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진심이었던 한 사람.
어디까지나 나의 관찰에서 비롯된 결과물들이지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뉘는 듯 보인다. 먼저,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 두번째로 겉보기식 공부, 즉 남의 시선에 의한 보여주기식 공부, 마지막으로 아예 하지 않는 부류, 이렇게 3가지로 보인다.
우리반 반장은 공부에 매우 진심인 편인 듯 보인다. 처음에는 보여주기식 공부인 줄 알았다. 반에서 매일 공부를 하는데,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다보니 오히려 이것은 반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사람으로서 모법을 보이기 위한 겉핥기식 공부를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중간고사에 점점 가까워 졌을 때였다. 우리반 반장은 틈만 나면 반에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시험 범위의 내용들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 시험이 무려 3주나 남아있었음에도, 반장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전 범위를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질문을 해도 모든 말에 대답을 할 수 있었고, 암기 과목에서의 부족한 부분은 없었으며, 그나마 아쉬운 부분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수학만 조금 못할 뿐이었다.
우리반 반장을 보았다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다니, 한편으로는 대단하기도 하지만 결과가 안나온다면 우울하겠는걸..."
사실 내가 했던 생각이었긴 하다. 저리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아무리 시험을 못봐도 가장 낮은 등급이 2등급이 나올 것이리라고 난 생각하였지만, 나와는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했던 중학교 친구가 시험 시간에 마킹을 밀려버려서 시험 점수가 바닥으로 내리 꽂는 예시를 봤던 사람으로서, 저리 공부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과 약간의 우려가 있었다.
중간고사가 지나고 나서였다. 나는 평소에 수학을 좋아하고, 수학적 사고 머리가 감사하게도 좋게 태어난 몸이라 수학은 손쉽게 1등급을 찍었다. 그러나 나머지 암기과목들은 모두 2등급을 받아버렸었다. 세세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들은 큰 틀에서만 공부하기를 원하고, 세세한 것은 싫어한다.
그러나 우리반 반장은 달랐다. 시험 3주 전부터 반장은 이미 모든 내용을 세세히 꿰뚫고 있었으며, 이번 중간고사에 그 누구보다 자신감이 있어보였다. 나보다도. 하지만 반장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모든 과목에서 나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버린 것이다. 난 마음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의 공부는 진짜였다. 보여주기식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나보다 시험 범위에 한정되어서 만큼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절대 시험을 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도대체 무엇일까?
뭐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으나, 시험 끝나고 매우 활발한 반장의 모습을 보자니 미련을 떨친 듯 보였다.
그러던 중에, 반장이 내가 다니는 학원으로 학원을 옮기기 위해 원장님과 상담을 했었다. 그리고 상담 후에 내가 원장님과 대화하며 원장님이 내게 말하시기를,
"저 아이가, 공부는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안나왔다고 정말 슬퍼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이다. 아마 가장 비슷한 인물과 비유를 하자면 소설 이니미니 속 주인공의 모습과 가장 닮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고, 강인함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자기 자신의 깊은 내면을 외면하기 위한 일종의 자신을 속이는 연기인 셈이다.
아마 내가 반장의 입장이었다면, 화가나서 책상이라도 집어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장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다음을 위해 차근차근히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힘들 걸 알면서도 꽁꽁 숨겨가면서.
엊그제 국어시간이었다. 자리를 바꾸며 반장이 나의 앞자리가 되었었다. 국어 시간에는 문법을 배우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pdf파일에 필기를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총 4가지 색으로 하시는 것이었다. 어느 학생이는 검정과 빨강과 파랑은 누구나 볼펜으로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초록은 누가 가지고 다니겠는가? 나는 필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앞자리르 보았더니, 반장은 초록색 볼펜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초록색 단색 볼펜으로. 별 것도 아닌 상황이었지만, 나는 앞으로 반장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