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럴 때가 있다. 가끔보다 자주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으나, 어떤 일을 할 때에 굉장히 '뽕'이 차서 신나게 일을 완수하며 스스로 "나는 개쩔어...."라고 자기만족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정확히 하루가 지난 후에 이런 생각이 든다.
"어제의 나는 X신 이었어..."
어제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나를 감싼다. 그리고 어제의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이해가 가지 않기 시작하고, 그때의 내 자신이 멍청해보인다. 도대체 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글쓰기에 있어서는 고쳐쓰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한다. 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고친 글과 단 한번도 고치지 않은 글은 내가 보기에도 확연히 차이점이 보인다. 그리고 이 고쳐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나는 위에서 느껴진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갑자기 혼자 글쓰기 몰입하고 미친듯이 적어내려가다보면 엉터리 내용, 혹은 느끼한 글이 만들어질 때가 많다. 독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불러일으킬 내용과 문장을 수정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이러한 순기능을 지닌 반면, 역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편의 글을 완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쓴다고 가정해볼까. 주제를 생각한다. 그리고 중심 내용을 생각한다. 그리고 쓴다. 처음에 쓰다보면 막힘없이 타이핑이 잘 된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는 순간에는 마음이 180도 변한다.
"내가 이 따위 글을 쓰고 좋아하다니.... 부끄럽다....."
그러고는 원래 썼던 글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삭제해버린다. 저장해두기라도 하면 좋을 것을, 나는 여태껏 삭제해 왔다.
이것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찾은 결론은 어제의 내가 한심해보여도 그냥 믿고 가는 것.
어제의 내가 엉터리 글을 써놨다면, 어제의 나도 결국엔 '나'다. 어제를 믿는 것이 나를 믿는 것이다. 좀 엉터리면 어때, 그냥 믿고 써버린다. 그렇게 완성이라도 시켜보자. 자기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낙오자이자 실패자인 것을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고작 그 따위 감정과 생각들에 조종당하면 안된다.
지금 기숙사 침대에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쓰는 시간을 기준으로 몇분 뒤에 저녁을 먹으러 가야하고 아마 돌아와서 다시 이어서 쓰게 될 것이다.
굳이 하루가 지나지 않더라도 찰나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혼자만의 취함이 사라질 때가 있다. 저녁을 먹고 왔을 때 나는 이 글을 다시 삭제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끝까지 이 글을 완성시킬 것이다. 지금의 내가 인정한 글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기에 좀 엉터리면 어떤가. 글을 안쓰는 것 보다는 2000배 낫구만.
어제 썼던 글이 오늘에 와서 보니 현타가 와서 이런 내용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냥 자신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어차피 이거 읽는 분들은 뭐 저보다 더 뛰어나신 분들이라 제가 막 충고하듯이 말하는 게 좀 그렇긴 하네요. 뭐 어쨌든
"한잔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