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입니다.
저는 입이 있는데도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에요. 목이 있는데도 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글을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삶이었어요. 입에서 입으로 생각을 전하지 못하는 게 참 불편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주변에서 필력 하나는 끝내준대요. 한 번은 반장 선거에 나갔었어요. 말은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연설도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칠판에 읽지도 못하는 연설문을 작성해서 붙여놨어요. 글이라서 아무도 안 읽을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하나둘씩 읽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제게 필력 하나는 최고라면서 저를 뽑아주겠대요. 그렇게 저는 반장이 되었어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다른 반 친구들이 저희 반에 계속 들락날락해서 문제가 됐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들을 저지할 수가 없었어요. 말도 못 하고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었어요. 다른 반 친구들 입장에서는 벙어리처럼 보였나 봐요. 제 시선이 기분 나쁘다고 하더라고요. 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같은 학년 모든 반의 반장에게 제 글을 보냈어요. 제목은 세 글자였어요. '입장문' 세 글자요. 글을 참 잘 썼나 봐요. 친구들이 제게 최고의 글이래요. 다른 반 친구들도 더 이상 들어오지를 않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같은 반은 아니고 같은 동아리였죠. 토론 동아리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못 하는데 토론이라니, 미쳤었죠. 제가 좋아하던 사람은 토론을 무진장 잘했어요. 제가 가질 수 없는 거였어요. 말을 잘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부러워서 저는 질투를 했어요. 근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제게 와서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번 토론 주제에 대해 제 생각을 적어달라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을 적어줬어요. 역시나 똑같았어요. 최고래요. 글이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 사람은 토론 주제마다 제 생각을 적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지내오면서 소리도 못 내는 제가 가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느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사랑이란 감정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어요. 그 사람 덕에 토론부에서 저는 토론 대회를 서포트하는 사람으로서 인정도 받았어요. 제 의견이나 생각도 좋고, 문장의 표현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그 사람이 저를 칭찬할 때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요. 최고였죠.
그 사람이 저를 주말에 불러낸 적도 있었어요. 자신과 토론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전 말을 못 하니까 못한다고 했죠. 그랬더니 글로 토론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했죠. 그 사람은 말로 하고, 저는 노트북을 통해 글로 썼어요. 결과는 제 압승이었어요. 그 사람은 제가 글을 잘 쓸 뿐 아니라 논리적이라고 칭찬했어요. 특히 그 사람의 칭찬은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서 저는 선물로서 제 나름의 언쟁에서 이기는 법을 정리해서 그 사람에게 보내줬어요. 무진장 좋아하더라고요. 저도 그 사람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고백하기로 마음을 먹었었죠.
그 사람을 위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말을 할 수 없는 만큼, 손편지를 통해 감동시키고자 했죠. 저의 진심을 직설적이면서도 은유적인 글쓰기를 통해 한 땀 한 땀 손으로 써 내려갔어요. 다 쓰고 보니 6시간은 흘렀더라고요.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어요. 저는 처음부터 읽어가며, 3장 분량의 편지를 수정했어요. 고치고 계속 고쳤어요. 끊임없이 고쳤어요. 잠을 잘 때는 어떤 문장을 써야 그 사람을 감동시킬지만 고민했어요. 그렇게 편지를 완성했어요. 그 사람에게 제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투자한 시간은 13일이었어요. 이제 편지를 전달할 일만 남았죠. 수고한 자신을 칭찬하며 학교에 가야 할 내일을 위하여 잠을 청했어요.
다음 날이었죠. 그 편지를 그 사람의 사물함에 넣어놓기로 정했어요. 그 사람은 평소 깔끔한 성격이라 사물함이 간결해서 제 편지가 바로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편지를 거기에 뒀어요. 학교 뒤편 큰 나무에서 기다릴 테니, 거기로 와달라고 마지막 문장에 적었었죠. 다행히도 다른 반이라 그 사람이 편지를 보고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몰랐어요. 오히려 다행이었죠. 하지만 그 시간도 길지 않고 금방 학교가 끝났어요. 그런데 일이 터졌어요. 선생님이 제게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교무실로 책상을 몇 개를 옮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이 급했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 선생님을 도와드렸어요. 10분이나 소모했죠. 그래서 바로 학교 뒤편으로 달렸어요. 역시나 그 사람을 기다리게 했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다니, 죽을죄를 지었어요. 저는 죽어 마땅했나 봐요. 그래서 급하게 달려가려고 했었어요. 근데 어째서였을까요. 그 사람 말고도 다른 이성 친구가 한 명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이성 친구에게 말을 꺼내더라고요. '이 편지를 너가 썼냐고' 말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이성 친구는 자기가 쓴 게 맞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감동이라며 앞으로의 시간을 연인으로 보내자고 했어요. 물론 제가 아닌 그 이성 친구에게요. 눈물이 났어요. 고함을 질렀어요. 근데 소리는 없어요. 그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어요. 가서 따져야 하는데, 용기가 안 났어요. 괴로웠어요. 그래서 집으로 달려왔어요.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혼자 살거든요. 빨리 제 슬픔을 달래야 했어요. 안 그러면 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해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켰어요. 인터넷은 제 친구거든요. 제가 말을 못 해도 전혀 상관이 없거든요. 최근에 그 사람을 위한 편지를 쓰느라 인터넷도 안 들어갔었어요. 근데 결국 인터넷으로 다시 도망친 꼴이라니, 죽어 마땅한 사람이 확실해요.
오랜만에 인터넷에 접속하니 기분이 나름 좋아졌어요. 저는 평소에 남이 쓴 연설문을 보는 걸 좋아해요. 제가 쓴 거랑 비교하면 제가 월등히 잘 써서 기분이 좋거든요. 게시물 중에 '최고 연설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어요.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들어갔죠. 내용물을 본 순간, 저는 패닉을 느꼈어요. 제가 쓴 연설문이었어요. 그것도 이번에 반장이 되면서 썼던 거 말이죠. 제 반의 누군가가 올렸나 봐요. 괜찮아요.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의미겠죠. 기분만 잠시 나쁠 뿐이에요. 그 밑에 연관 게시물이 있었어요. 제목은 '최고 입장문'이더라고요. 눌렀어요. 근데 이것도 제가 쓴 거더라고요. 다른 반 학생에게 당부하는 내용의 입장문 말이죠. 괜찮아요.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의미니까요. 그런데요. 왜 이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자신이 글을 썼다고 밝힌 걸까요? 설마 하며 다시 '최고 연설문' 게시물로 돌아가 봤어요. 여기서도 게시물 작성자 자신이 썼다고 하더라고요. 이럴 순 없는 일이었어요.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눈물은 나오는데 소리는 안 나와요. 제 고함보다도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더 쩌렁하게 울렸어요. 너무나 괴로워서 손톱으로 팔뚝을 긁었어요. 피부가 벗겨지면서 피가 났죠. 멈춰야 해요. 빨리 다른 무언가를 해서라도 기분을 전환해야 해요. 그래서 검색 주제를 바꾸기로 했어요. 최근 검색 내역을 눌렀죠. 토론 동아리 일 때문에 최근 제가 토론 주제들을 검색했던 게 널려있더라고요. 뭐, 그냥 들어갔죠. 그런데요, 토론 주제마다 게시물이 몇 개씩 더 올라와 있더라고요. 불길했어요. 팔뚝에 흐르던 피가 굳기 시작했어요. 마치 팔을 경직시켜서 제가 보지 못하도록 막는 모습 같았어요. 설마 했죠, 저는 게시물을 눌렀어요. 그런데요, 제가 토론 동아리에 있으면서 그 사람을 위해 제시했던 제 의견, 주장과 근거들이 어째서 거기에 있었을까요. 밑에 광고도 있어요. 돈을 받나 봐요. 다시 팔뚝을 긁었어요. 저 혼자 우는 게 아니었어요. 제 팔뚝도 피를 토하며 울어줬어요. 저는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글을 더 찾아봤어요. 그 사람이 제게 물어봤던 제 생각, 제 아이디어들이 다 적혀있더라고요. 심지어 문장도 그대로였어요. 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칼을 찾아야만 했어요. 죽어 마땅한 제가 그 사람을 찌를지 저를 찌를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숨이 거칠어진 것 같았어요. 심장박동이 더욱 빨라지고 강해진 것 같아요. 고함을 계속해 질렀어요. 목에서 꺽 꺽 하는 소리가 났어요. 난생처음으로 제가 소리를 냈어요. 목에 무리가 갔는지 피가 섞인 가래가 핸드폰에 떨어졌어요. 그런데요, '언쟁에서 이기는 법'이라는 제목의 게시물 위에 떨어졌더라고요.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확인해야만 했어요. 결국 게시물을 읽어봤어요. 제가 그 사람에게 줬던 선물 그대로였어요. 이번에도 밑에 광고가 있었어요. 댓글 창이 보여서 댓글을 눌러봤어요. 사람들 반응이 대단해요. 작성자님은 대단하다고, 글 쓰는 솜씨가 남다르다는 댓글이 많더라고요. 근데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따로 있었어요. 그 밑에 연관 게시물로 '사랑의 손편지'가 있었어요. 안 돼요. 이리 흘러가서는 안 돼요.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의 증표이자 13일의 헌신이 짓밟히면 안 되는 거잖아요. 확인해야만 했어요. 마지막 문장을요. 핸드폰 화면에 핏방울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멈출 수 없었어요. 저는 그대로 마지막 문장을 읽었어요. '학교 뒤편 큰 나무에서 기다릴 테니, 거기로 와줘.'
아, 뺏겼어요. 제 모든 게 뺏겼어요. 소리도 못 내는 제가 가진 유일한 것을 뺏겼어요. 저작권도 저를 포기한 게 분명했어요. 저는 칼을 빼 들어서 제 경동맥에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2025년 4월 24일. 유서만큼은 지켜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