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a Kim Dec 13. 2023

워킹맘의 눈물포인트 - 하나

전생에 나라를 구하다

‘띡띡띡띡’ 현관문 비번을 누르면 집 안에서는 엄마다~하는 괴성과 함께 두 녀석이 다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자마자 둘째는 신발장 앞까지 맨발로 나와 내 허벅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따라오고, 한발 늦은 첫째는 엄마, 엄마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퇴근을 하고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신랑은 이런 나를 보며, “좋겠네~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이 많아서.”라고 하지만, 목소리에는 영혼이 전혀 없다.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빛의 속도로 달려와 반겨주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럽지만, 만약 자고 있더라면 더 사랑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씩 해 본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큰 아이가 따라온다. 

“엄마, 오늘 속상한 일이 있었어.”

“응. 말해줘.”

“오늘 돌봄 끝나고 나왔는데, 할머니가 안 계신 거야. 그래서, 엄마가 데리러 온 줄 알고 좋아했단 말이야. (말끝이 살짝 흐려진다.) 그런데, 아니었어.”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정문 근처에는 긴 벤치가 하나 있는데, 올해로 76세이신 어머님은 그곳에 앉아 돌봄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를 기다리신다. 그런데 그날은 벤치가 아닌 다른 곳에 계셨나 보다. 아이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엄마가 데리러 온 줄 알고 좋아했다가, 다시 할머니를 보고 엄마가 아니라 큰 실망을 했다는 얘기였다.     


“많이 속상했어?”

“응.”

“눈물 났어?”

“어, 근데, 참았어.”

“왜?”

“할머니가 속상하잖아.”

“.........................”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사실, 어린 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얘길 하루 이틀 듣는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렇게 매일을 엄마가 아닐까 기대하는 아이의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아니란 걸 알고 실망한 마음에 지금 나처럼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을 땐, 그 눈물을 어떻게 처리(?) 할까? 그리고, 그 와중에 할머니가 속상할 거란 생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큰 아이를 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정확하게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미안함만은 아니었다.

이 작은 몸속에 어디에 엄마를 향한 끝없는 기다림과 배려 그리고, 참을성과 인내가 있는 것인지.

나의 몸을 빌려 태어난 큰 우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힘들었던 내 하루를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