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안 쓴 지 1년 반이 흘렀다.
2021년 12월 27일, <오월의 청춘> 리뷰를 남기고 광고대행사를 퇴사했다.
카피라이터라고 적힌 명함을 가지고 있던 기한은 4개월.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적은 없다.
4개월의 기한 동안 남은 것은 지금도 이따금씩 기억 나는 사수의 날선 말들. 팀에서 배제되었던 기억. 나라는 존재가 무쓸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이후,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입사한 중견기업 계열사.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시기에 동거인이 코로나가 걸렸음에도 회사에 나오라는 것이 이해가 안돼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기다리며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방황하다 찾은 것은 기자.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고 믿었기에 언론사 정치부 기자로 들어갔다. 초반 몇 주는 좋았다. 글을 쓸 수 있었고 질문할 거리를 찾는 것을 잘했기에 기자라는 직업은 나한테 맞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자의 직무는 맞을 수 있으나 직업적 문화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정치부 기자로서 국회에 일하는 것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정치인들, 시민단체들이 발표를 하고, 발표가 끝나면 뛰어 따라나가 질문을 해야 했다. 이런 것들은 내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공부하면 해결되는 문제이다. 다만, 선배가 내뱉는 말들은 내가 자의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실수를 하고 변명을 하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처음부터 꼼꼼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 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런 말들은 폭언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폭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또한 내가 쓴 문장들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써야 되는지에 대한 피드백들이 선배 3명마다 다 달라 누구에게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국회로 출퇴근하는 것도 고되었고 출근을 해서 겪을 일들이 암담해 출근길에 울기도 했다. 점점 손목과 무릎에 원인 모를 통증이 생겼고 위염이 생겼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었다.차에 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은 기본, 뛰어 내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출근길에 퇴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세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의 공통점은 사람이다. 직무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아직 몇 개월 안 된 신입이고 배우면 되기 때문에 직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 다만, 상사가 하는 부정적인 피드백들, 밥 먹을 때 어색함, 상사와 사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싫었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이렇게 살고 견디면 이것이 무뎌진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거기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버텨도 내 정신 건강이 무사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결국, 지금은 4년동안 학원 강사로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전문 과외 강사로 일하고 있다. 물론, 일반 사무직에 비해 불안정적이다. 학생이 나가면 그 달 수입이 크게 줄어든다. 앞으로의 전망도 유망하지 않다. 극심한 저출산으로 인해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교재 연구하는 것이 좋고, 학생과 대화하는 것이 좋고, 학생의 성적이 오르면 좋다. 무엇보다 몸이 아프지 않다.
여러 회사들을 거치며 깨달은 점은 내 몸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 일반적인 루트를 따르지 않은 것의 불안함은 크지만 내 몸이 더 중요하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참고 견디지 못할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지금 내린 결론은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라는 존재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기 위해,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자신을 희생시킬 필요 없다. 노후 대비, 경제적 자유, 부업, 투자 등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에 애써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고 현재에 집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