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회피할 핑계가 필요해(소소 22개월)
22개월 아기가 아파트 이름들을 줄줄 말했다. 조그마한 입으로 “아이파크 대박”이라고 말하는 게 귀엽기 그지없었다. 순진무구한 아이가 대박이라고 말하니 진짜 대박 날 조짐이 아닐까 설레었다. 나중에는 ‘조정지역’이라는 말도 했다. 아빠 어디 가셨냐고 물으면 예전에는 회사라고 답했는데 이제는 부동산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마다 너무 말도 잘하고 귀엽다고 느꼈을 뿐,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휴직 중인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을 모두 전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황발작 증상은 수시로 찾아왔다. 아이도 못 돌보고, 경제 활동도 못하고, 자꾸 아프기만 하니 나 자신이 미치도록 싫었다. 한 마디로 잉여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2020년 당시 코로나의 강타로 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었다. 시장에 풀린 유동자금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갔다. 나도 주식과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겠노라 마음먹었다. 공부를 시작했더니 마음도 즐거워지고 공황장애 증상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가족들도 나의 새로운 취미를 환영했다. 밥도 못 먹던 애가 얼굴에 생기가 돈다고 했다. 공황장애는 마음의 병이라는데,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내 병도 낫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가는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고 있었고 시기만 잘 타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과 상담일, 나는 주식 공부를 시작했고 이걸 하고 나서 공황 발작의 빈도가 줄었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런 내게 김날따 선생님은「워런 버핏 바이블」이라는 책을 먼저 읽고 주식을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이미 투자 전략을 다 세웠는데 새로운 책을 읽으라 하니 내키지 않았다.
“신니씨, 공부하는데 전교 1등이 공부 비법 알려준다면 그거 들을 거예요, 안 들을 거예요?”
“당연히 들어야죠.”
“그럼 주식 투자하는데 한국 1등도 아니고 세계 1등이 비법을 알려준다는데, 당연히 이거부터 읽어야죠.”
결국 어거지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결정적으로 세계 1등의 투자법은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성질 급한 내게는 그런 인내심이 없었기에 고민 끝에 주식 투자를 깔끔히 포기했다. 내가 생각한 전략대로 가자면 버핏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대가와 반대로 가기에는 내 간이 너무 작았다. 책을 추천한 선생님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부동산은 이미 주식보다도 더 심하게 마음을 빼앗긴 터라, 혹시 말하면 못하게 할까 봐 상담할 때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다.(그때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는데, 두고두고 후회했다. 역시 정신과 상담을 할 때는 최대한 솔직해야 한다.) 때마침 예전에 살던 집을 처분하게 되어 손에 작은 목돈이 생겼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고 아무 구실도 못하던 내가 실은 재테크의 여왕이었다는 반전을 지인들에게 공개하는 상상을 하며 짜릿함을 느꼈다.
당연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더 줄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이 돈으로 적절한 물건만 얼른 사고 딱 끊겠다고 생각하고 더욱 공부에 매달렸다. 아이에게 소홀하다는 생각에 불안해질 때면 그럴싸한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아가야, 다 네 것이 될 거야. 이게 다 널 위한 일이란다.’
처음엔 딸의 새로운 취미생활을 지지하시던 친정엄마도 걱정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나는 마치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멈추지 못했다. 그 사이 남편은 복직했고, 집에는 아이와 나 둘 뿐이었다. 남편은 퇴근하면 나의 부동산 소식 브리핑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이는 옆에서 혼자 놀았다. 나는 수중의 돈을 다 쓰고 나서야 부동산 공부를 멈췄다.
"자꾸자꾸 보다 보면 익숙해져" 소소가 주로 겁이 나는 상황을 이겨내려 할 때 하는 말이다. 소소는 너무 무서우면 울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저렇게 말하면서 정면승부를 띄울 때가 있다. 아마도 저 시기의 내게 재테크는 삶의 돌파구가 아니라 육아로부터 벗어날 핑계였던 것 같다. 그때 그렇게 도망쳤던 나를 이제는 소소의 말이 붙잡는다. "엄마, 자꾸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져! 육아를 피하지 마!" 스스로를 다독이려 애쓰는 어린 성숙함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다. 자꾸만 엄마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나를 다시 제자리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