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의 경험이 부족해 보여요(소소 27개월)
용기를 내어 아이의 상태를 전문가에게 진단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지역에서 인지도 있다는 소아정신과를 찾아 전화를 걸었더니 가장 빠른 예약이 두 달 후라고 했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사설 발달센터를 찾아가기로 했다.
찾아보니 가까운 곳에 발달센터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중 당장 오는 토요일에 검사가 가능하다는 곳으로 예약했다. 전화로 간략히 사정을 설명하니 와서 우선 놀이 평가를 해보자고 했다. 엄마와 아기가 놀이를 하면 그걸 전문가가 보고 평가해준단다. 비용은 10만 원. 5만 원을 더 추가하고 아빠 놀이 평가도 같이 하기로 했다.
센터에서 제대로 된 상담을 받으려면 어린이집에서 단체 생활하는 모습도 전달해야 할 것 같았다. 울먹이며 아이의 상태를 묻는 내게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은 차분히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엄마도 안 찾고, 좋아하는 장난감이랑 책만 봤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점점 다양한 활동에도 참여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웃어도 주고 질문하면 가끔 대답도 해줘요. 원장 선생님이 매일 번쩍 들어 올려주는 놀이도 처음엔 전혀 관심 없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어 하면서 다가와요.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으로는 정말 문제가 있는 아이라면 이렇게 단기간에 좋아지진 않거든요. 어린이집 다닌 지 이제 두 달 됐는데 짧은 기간에 아이가 달라진 걸 보면, 어쩌면 가정에서 적절한 상호 작용의 경험을 제공받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가정에서 상호작용의 경험을 제공받지 못해서 아이의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니 역시 내가 아이를 망쳤구나 싶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얼른 눈물을 닦고 두 달 동안 생각보다 빠르게 좋아졌다는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정말 경험 부족이 원인이라면 부모가 잘하면 아이가 좋아질 수도 있는 거니까. 남편과 함께 서툴지만 적극적으로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3일 후 떨리는 마음으로 센터를 찾았다. 소소는 부쩍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나가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인상 좋은 센터장 선생님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검사와 평가에 앞서 나의 상태, 아이가 방치되었던 시간, 어린이집에서의 이야기 등을 간략히 설명했다.
놀이 평가가 시작되었다. 먼저 엄마와 아이가 교실에서 놀이를 하고 선생님은 멀찌감치 떨어진 책상에 앉아 관찰했다. 소소는 낯선 선생님을 경계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새로운 놀잇감들을 탐색했다. 아빠의 순서도 똑같이 진행되었다. 아빠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검사지들을 체크했다.
우리 부부는 요 며칠 최대한 적극적으로 놀아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선생님에게도 미리 솔직히 말해두었다. 우리는 그동안 이렇게 놀아주지 못했는데 이번 주부터 노력 중이라고. 우리가 갑자기 최선을 다하니 평가 결과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잘 나오면 정확한 진단이 안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으며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여요. 아이 행동 읽기도 열심히 해주시고요. 그런데 아이에게 공감해주시는 모습이 안보였어요. 아이가 평소에 낯가림이 심하다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러니 엄마랑 놀다가도 제가 낯서니까 계속 저 있는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더라고요. 그건 아이가 낯선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니 무섭거나 불편하다는 뜻이에요. 그럼 보통은 부모님들이 '무서워? 낯설지? 괜찮아' 이렇게 감정을 읽어주고 아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거든요.”
순간 아차 싶었다. 평가를 하는 동안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님의 경우엔 아이가 저를 쳐다보면 "아, 저기 선생님 있지? 선생님 봤구나" 하고 행동을 그대로 읽어주기만 하고 끝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점이 아버님도 똑같으셨어요. 행동 읽어주기는 열심히 하셨지만,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다독여주는 건, 두 분 다 전혀 없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부정적인 피드백에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점점 마음이 아파왔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데 낯선 공간, 낯선 사람 앞에서 아이가 얼마나 불안했을까. 평가 시간 동안 그 힘든 마음을 엄마와 아빠가 한 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생각하니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최근 시작된 우리 부부의 갑작스러운 적극 육아는 소소의 입장과는 관계없이 그냥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15만 원이 조금도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선생님은 잠시 소소와 노는 모습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소소는 처음엔 경계하며 가만히 있더니 선생님의 노련한 리드 하에 조금씩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오', '아' 이런 감탄사 위주로만 말하는데도 소소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 신기했다. 요 며칠 아이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는데도 뭔가 허공에 말하는 듯하던 나와는 영 딴판이었다.
놀이 평가와 검사지를 통한 센터의 소견은 이랬다. 아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나 엄마가 너무 걱정이 많아 보임. 정 원한다면 센터수업을 할 수는 있으나 일단 부모가 그동안 아이와 상호작용을 안 해줬으니 집에서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늘려볼 것을 권함.
상호작용을 늘리라니 아이와 기가 막히게 놀아주시는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당장 친정으로 가는 짐을 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