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임을 느끼다(소소 27개월)
“선생님, 저 이제 엄마가 된 것 같아요.”
고백하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참아내며 겨우 말을 마친 참이었다.
“축하해요. 정말 축하해요.”
김날따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진료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 잎사귀들마저도 싱그러운 희망을 뿜어내는 듯했다.
목적성을 띠고 친정집으로 2주간 여름휴가를 떠났다. 누구보다도 상호작용을 잘해주시는 친정엄마가 계시니 아이에게 최고의 자극이 되리라 믿었다. 예상대로 소소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소소의 온몸에 뽀뽀를 하거나 같이 바닥에서 뒹굴거나 꼭 안아주셨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시는데도 소소에게 무조건 잘했다며 박수를 쳐주셨다. 우리는 거의 매일 바닷가에 가서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하고 재래시장을 누볐다. 나도 예전보다 휴대폰 하는 시간을 줄이고 소소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비록 놀아주는 요령이 없어서 물리적으로만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아이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표정이 밝아지고 웃음이 늘었다. 물어도 대답을 안 하던 아이가 절반 이상 대답이 돌아왔다. 책을 보는 시간도 훨씬 줄었다. 이대로만 쭉 가면 무난히 회복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희망적인 사인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에는 여전히 큰 돌덩이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는데 내가 좋아지지 못하면 소소가 불행해지리라는 두려움이었다. 그 느낌은 마치 불안감보다 절망감에 가까웠다. 불쑥불쑥 우리 가족의 파탄 난 미래가 그려졌고 그 속의 우리는 패잔병 같이 암울한 모습이었다.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구나. 불쌍한 우리 아기.’
‘엄마가 잘할게. 그런데 여태까지 엉망이던 내가 갑자기 좋은 엄마로 변할 수 있을까?’
‘애가 이렇게 됐는데 해야지. 엄마면서 그런 것도 못해?’
‘하지만 자신 없어. 할머니 없이 나랑만 있으면 또다시 나빠질 것 같아.’
‘엄마잖아. 엄마면서 그 정도도 못하겠어?’
머릿속에서 되돌이표 같은 대화가 계속되었다.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려는 자아와 패배감으로 가득한 자아가 매일 소리 없는 전쟁을 치렀다. 친정엄마가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아무리 유심히 관찰해도 포인트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할머니가 없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리셋될 것만 같은 숨 막힘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너져 내린 심리를 다잡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자폐증 전문가의 책이지만 자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책이라며 추천받은 「독특해도 괜찮아」를 집어 들었다. 한 줄의 문장이라도 건지길 바라는 절박함으로 책을 펼쳤다.
책에는 놀랍게도 자폐증을 안고 성장한 개인과 가족들의 수많은 성공 사례들로 가득했다. 여기서 성공이란 자폐증을 가진 본인도, 그 부모도 모두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 자폐증을 가지고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놀라움과 동시에 가슴에 작은 희망의 물결이 이는 게 느껴졌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놀림이 빨라졌다.
그들의 사례를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부모가 자녀를 개선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부모는 아이가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도, 갑자기 고성을 질러도, 기이한 물건에 집착을 보여도 그만한 행동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존중해주었다. ‘똑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건 비정상이야. 고쳐줘야 해.’라고 생각하는 대신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우리 애가 불안할 때 나오는 행동인데. 지금 많이 불안한가 보다.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이렇게 공감하고 아이를 도와주려 애를 썼다.
나는 어땠던가. 소소가 태어난 이후 늘 아이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저울질하느라 노심초사했다. 소소는 한동안 놀이터에 가면 그네만 주야장천 탔는데, 나는 그것마저 못마땅했다. 다른 집 애들은 다양한 놀이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왜 우리 애는 정적인 그네만 타는지,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 이마에 ‘정상 발달’이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그네를 밀어주며 그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반면 이 책의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인정하고 서서히 주제의 폭을 넓혀가며 삶의 질을 향상해나갔다. 아이가 아무리 독특한 행동을 해도 부모가 호응하고 지지해주니 아이는 자신이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 믿으며 자란다는 단순한 원리였다. 자폐증 유무와 상관없이 그냥 자존감 높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행복할 수 있다 쳐도 그 부모는? 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 불행하기만 한데, 저들은 자녀가 자폐를 가지고 있는데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 거지?
그동안 나는 아이를 열심히 키워 밥벌이할 능력을 만들어 독립시키는 게 육아의 최종 목표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 속의 부모들은 자녀가 졸업장이나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행복했다. 그들의 자녀가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제야 부모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건 어떤 외적인 성취도 아닌 자녀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이 번쩍 들고 세상이 달리 보였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행복해질 수 있어. 아직 늦지 않았어.'
책을 덮고 거실 한쪽에서 할머니와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아이가 시야에 또렷하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앙증맞은 눈, 코, 입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내 아이로구나. 뜨거운 무엇이 울컥 가슴에 치밀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27개월, 공황장애로 쓰러진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