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키우기 fast fail

물고기 키우기로 fast fail에 도전하다(소소 31개월)

by 신니
초기 프로그램은 여기저기 부족하고 누락된 부분도 많았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작업해서 그걸 고쳐나갔습니다. 경쟁사들이 완벽한 디자인을 만드느라 손가락만 빨고 있는 동안 우리는 벌써 다섯 번째 샘플을 만들고 있었죠. 경쟁사의 물건이 겨우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벌써 열 번째 샘플을 제작 중이었습니다. 결국 저쪽은 계획을 짤 때 우리는 실행에 옮긴다는 것의 차이죠. 우리는 첫날부터 바로 행동에 옮깁니다. 경쟁사가 ‘어떻게 계획할지’를 계획하는 데에만 여러 달을 소비하는 동안에요.

- 마이클 블룸버그 前 뉴욕시장, <Bloomberg by Bloomberg>


아이에게 좋다고 해서 진작부터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소 하나 키우는 것도 죽을 지경인 데다 화초도 내 손이 닿기만 하면 족족 죽어나가는 터라 새 생명을 또 들인다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망설이는 사이 소소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뭔가를 키우기 시작하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인터넷에서 ‘키우기 쉬운 동물’이라는 검색어로 후보들을 몇 번이나 뽑았는지. 그렇지만 달팽이는 자연 방사가 어렵다니 싫고, 사슴벌레는 벌레니까 싫고, 어떤 건 냄새 나서 싫고, 어떤 건 빨리 죽는대서 싫었다.


요즘 소소가 원하는 건 물고기였다. 하지만 어항 관리며 물비린내며 정말 엄두가 나지가 않았다. 그러다 소소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온 뒤부터는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반려동물이 아이 정서에 좋다는데 이 상황에서도 망설이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웠고 하루하루 큰 숙제를 미루며 사는 기분이었다.

fast fail3.jpg

그러던 중 우연히 fast fail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성공하려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실패를 해봐야 거기서 얻은 노하우가 쌓여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구글을 포함한 실리콘밸리의 기본 정신이라고 했다. 심지어 구글에서는 프로젝트를 하다가 빨리 실패를 하면 파티도 열어준단다. 짧은 두 단어가 주는 임팩트가 심장을 강타했다. 그래, 실패가 쌓여야 성공이 되는 거야.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시원한 기운이 등을 떠미는 듯 용기가 샘솟았다.


당장 소소의 물고기가 떠올랐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일단 키워보고 화초처럼 다 죽어버리면 그때 포기하자. 물비린내가 너무 심하면 그때 처분해버리자. 실패하더라도 일단은 시작해보자. 그 길로 인터넷에서 5만 6천 원짜리 작은 어항 풀세트를 주문했다. 키우기 쉽고 잘 죽지 않는다는 어종인 구피 20마리도 분양받아왔다.


구피들은 새 집에서 의외로 잘 지내주었다. 얼마 후엔 새끼들이 태어나는 경사도 보았다. 새끼가 태어나니 어항이 좁아져서 구피의 절반을 이웃에게 분양해줬다. 새끼도 보고 분양까지 하고 나니 이젠 물고기 키우기에 안착한 것 같아 뿌듯했다.


어느 날부턴가 어항에 이끼가 끼고 물이 점점 탁해졌다. 구피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검색을 해보니 이유가 너무 다양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급기야 구피들이 먹이를 먹지 않기 시작하더니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미 구피의 절반이 죽어있었다. 남편이 얼른 나무젓가락으로 건져냈다. 그 후로도 구피는 계속 두세 마리씩 죽어나갔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볼 새라 아침저녁으로 황급히 건져내기 바빴다. 아이 정서를 위해 데려온 것들인데 죽은 구피를 보면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웠다. 다행히 구피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구피가 이사 갔다고 하니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미 구피를 이웃에 분양해주는 모습을 봐서 그런 것 같았다.


구피들이 죽기 시작한 사흘째, 하원 후 어항에 달라붙어 있던 소소가 “구피가 누워있다!”라고 외쳤다. 아뿔싸.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기 직전에 어항을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는데. 소소의 말대로 죽은 구피 한 마리가 배를 보이고 누워서 둥둥 떠 있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용궁 갔다고 말할까, 하늘나라 갔다고 할까, 솔직하게 죽었다고 말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아이가 상처 받지 않을지 정신없이 짱구를 굴리는 참인데 소소가 말했다. “물고기가 누워있다. 물고기가 낮잠 자고 있나 봐.”


아. 아이의 이 한마디에 나의 고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며칠간 아이가 상처 받을까 봐 걱정하고 호들갑을 떨었던 우리 부부의 행동은 괜한 설레발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눈높이로 세상을 잘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은 구피들을 위해 다음날 우리 가족은 차를 몰고 30분 거리의 전문 수족관을 찾았다. 속성 과외로 어항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이끼와 찌꺼기를 먹는 물고기도 분양받아왔다. 이후 나는 건강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희열을 느꼈다. fast fail이 바로 이거로구나. 부담감을 무릅쓰고 일단 물고기 키우기를 시작했고(빠른 실행) 한 달 후 어미 구피가 모두 죽어버렸다.(빠른 실패. 구피의 명복을 빕니다) 하지만 닥쳐보니 사실은 아이가 별 상처를 받지 않았고(교훈 1), 어항의 이끼를 관리하려면 청소용 물고기가 유용하다는 것과(교훈 2) 먹이를 과하게 주면 물이 오염되어 물고기들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교훈 3) 살아남은 구피들은 쑥쑥 크더니 다시 새끼까지 낳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성공) 이는 우리 부부가 부담스럽다며 계속 미루기만 했다면 영원히 몰랐을 세계였다.


실패가 두려워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을 때만 움직이던 나였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아파서, 바빠서, 어려워서, 관심 없어서 등 갖은 핑계들을 갖다 붙이며 시작조차 못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내게 이번 일은 실패의 종점이 나락이 아닌 배움이라는 새로운 자신감을 주었다.


fast fail을 생활의 다른 부분에도 적용해 보고 싶어졌다. 또 망쳐볼 게 뭐가 있을까? 우선 육아용품을 살 때 소소가 좋아할지, 뽕을 뽑을 수 있을지 점치는 데 너무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필요하면 일단 사보고 아니면 ‘이번엔 꽝이네’ 하고 쿨하게 처분하기를 연습중이다. 또 내가 가장 자신 없는 것, 소소와의 놀이에도 적용해보고 있다. 소소는 가끔은 웃고 가끔은 지루해 보인다. 아이가 지루해 보이면 나는 자신감이 훅 떨어지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거나 휴대폰으로 눈이 간다. 침착해. 자꾸 망치다 보면 요령을 알게 될 거야. fast fail을 떠올리면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다만 40년의 사고방식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게 쉽지 않기에 아직도 지행일치가 요원하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개념을 알고라도 있는 게 어딘가.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천 성공도 한 실패부터다.


fast fail2.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성격은 왜 이럴까3(3호 31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