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가 보이게 웃어요(소소 31개월)
만약 소소가 표현을 할 줄 알았다면 진작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엄마, 집안 분위기가 왜 이 모양이야?”
나는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지만 육아는 여전히 버거웠다. 특히 아이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그 적막함. 활기 없고 지루해 보이는 소소의 모습은 권태로움마저 느껴졌다. 분명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느꼈는데 아직도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을 못 견뎌하는 내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태는 날이 추워져 놀이터를 갈 수가 없게 된 이후로 더욱 심해졌다. 나른한 오후 4시부터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어떻게든 ‘버터내야’ 했다. 오매불망 남편의 퇴근 소식만을 기다렸다. 권태감을 이기지 못해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관심도 없는 인터넷 뉴스를 들여다보고 채팅방을 들락거렸다. 내가 또 완벽하려고 하나 봐, 아이가 혼자 사부작거리며 놀 때도 있지, 릴랙스 하자. 스스로에게 말해 봐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RT 수업에서 배운 대로 놀이를 하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고, 중압감에 RT식으로 놀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더 많았다. 매일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스트레스를 안고 한참 남은 정신과 상담일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TV 프로그램「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가 친구들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처방을 제시하는 걸 봤다. 그런데 첫 번째 처방이 ‘경쾌한 엄마 되기’였다. 화면 속 엄마가 너무 심각하고 처져있다고 했다. 패널들도 한 목소리로 엄마가 다운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상대의 표정이나 태도를 다 살피고 있기 때문에 엄마의 다운된 모습이 아이가 말을 하는 것에 더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의 반응으로 보건데 확실히 내 얼굴과 목소리도 어둡고 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작년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등하원 때 내가 아이를 반기는 기색이 없다고 했었다. 지난달에는 소소의 문화센터 수업 정보를 알아보러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걱정이 가득한 게 느껴져요"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주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분이 “어디 아프세요? 괜찮아요? 너무 힘들어 보여요.”라고 말하며 가방에서 단팥빵을 하나 건네주셨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반갑게 인사만 나누는 관계고 그날 내가 특별히 아프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오하하 선생님도 내가 낮잠이라도 건너뛴 날이면 귀신 같이 “어디 몸 안 좋으세요?”라고 물어왔다. 심지어 RT 수업 녹화분을 보며 수업 모니터링을 해주시는 교수님이 화면 속 내 모습을 보고 이 엄마는 수업에 의욕이 없냐고 물어서 오하하 선생님이 아니라고 오해를 풀어드렸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를 변화시키는 제1의 해결책이 다름 아닌 ‘엄마가 유쾌해지기’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나 우울한 엄마는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구나. 30개월 동안 아이에게 어두운 표정만 보여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활짝 웃으며 큰 목소리로 활기차게 놀아주겠다고 작정하고 수도 없이 덤볐다. 하지만 금세 지쳐서 다운된 엄마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다른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열심히 했는데 안 되면 더 열심히 하고 더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면 방법을 바꾸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젠 전략을 바꿀 타이밍이었다.
친정엄마의 얼굴에서 힌트를 얻었다. 열 번이면 열 번 다 소소에게 활짝 웃어주는 친정엄마의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앞니였다. 나는 친정엄마의 앞니가 남보다 큰 편이라는 것과 입 주위가 약간 돌출형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영상통화를 할 때 얼굴이 가까이 보이면 그 커다란 앞니가 화면을 꽉 채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는 할머니의 모습은 소소가 태어난 뒤로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앞니'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우선 해도 안 되는 부분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전체적인 표정을 밝게 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활기 넘치는 움직임도 포기하자. 대신 나도 할머니처럼 무조건 앞니가 잘 보이게끔 입모양만 만들어보자. 이가 잘 보이면 표정도 환해보이겠지. 목표를 작게 설정해 수시로 앞니가 충분히 보이게 하는 것에만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게 지금 상태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실행의 시간. 앞니가 잘 보이게 말하기를 계속 연습하며 어린이집에 소소를 데리러 갔다. 이가 보이게 말하려니 절로 활기찬 말투가 나왔다. 금세 목이 아파왔지만 아이랑 놀아주느라 목이 쉬었다는 엄마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기에 아파도 기뻤다. 집에 와서도 생각날 때마다 앞니가 훤히 보이는 입모양을 만들려 애썼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소소가 내 앞에서 깔깔깔 웃으며 놀고 있었다. 늘 느리기 짝이 없었던 늦은 오후의 시곗바늘이 오늘만큼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8시쯤 퇴근했을 때 나는 몸이 몹시 지치기는 했지만 숨 막힘이나 권태감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때때로 깜빡했을 땐 스스로에게 ‘아차, 앞니!’라고 외쳤다. 엄마가 웃으니 아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집안 분위기 전체가 밝아지는 듯했다.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앞니가 잘 보이게 표정을 지어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파이팅 넘치는 엄마가 되면 좋겠지만 아직 내 깜냥에는 무리수다. 하지만 내 앞니를 보여주는 건 비교적 할 만하다. 소소에게 축 늘어진 모습 대신 크고 선명한 앞니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