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니 Sep 28. 2021

내 성격은 왜 이럴까3(3호 31개월)

Here and Now

  새로운 나를 발견한 기쁨에 나는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자랑까지 했다. 하루빨리 김날따 선생님에게도 이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었다고 고백했을 때처럼 선생님이 다시 한번 축하의 악수를 건네는 장면을 상상했다. 

  

  정신과 상담일 잔뜩 흥분한 나는 속사포처럼 모험담을 떠들었다. 내가 진실을 위해 얼마나 용맹하게 엄마와 언니에게 따져 들었는지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근사한 결론에 다다랐다고 자랑했다.

  

  흥분한 나와는 반대로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짐을 느꼈지만 착각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제 잘못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타고난 거였어요. 이젠 저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어요.”라는 눈물 글썽인 클라이맥스에 이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선생님이 건넨 것은 악수가 아닌 질문이었다.

  

  “신니씨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제가 하지 말라고 한 게 뭐였죠?”

  “심리책이랑 육아서 보지 말라고요.”

  

   나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챘다.

  

  “시중에 넘쳐나는 심리책들과 일부 사이비 상담센터들은 대부분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요.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으면 나를 고정시키게 되요. 과거는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이건 위험한 사고예요. 정신과 상담의 기본은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반대는 there and then 그때 거기로 돌아가는 거고요.”

  

  나 역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 헤맸다. 그럼 여태 내가 읽은 책들이 몽땅 잘못되었다는 건가? 언니와 엄마에게 질문한 것도 잘못됐다는 건가? 하지만 분명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를 찾게 되었는데? 혼란스러웠다.

  

  “집요하게 원인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암 진단을 받으면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며 계속 MRI를 찍어대며 에너지를 다 쓰죠.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요? 암에 걸렸으면 왜 암에 걸렸나 보단 항암을 할지 수술을 할지 결정하고 치료에 에너지를 집중해야죠.”

  “하지만 저는 진짜 내 탓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는데요?”

  “신니씨가 말하는 건 ‘깨달음’이 아니라 ‘탓’이에요. 내 잘못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타고난 탓이구나’ 하고 탓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깨달음 후에 정말 마음의 평화를 얻긴 했어요. 더 이상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그렇지만 어쩌다가 문제의 답은 맞게 썼어도, 풀이 과정이 잘못됐어요.” 

  

 윽. 내가 진정한 나를 찾은 게 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이라는 말인가.

 

 “과거로 이유를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돼요. 부모, 가족으로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돼요. 그렇지만 신니씨가 과거를 돌이켰을 때 답이 나왔나요? 안 나왔잖아요. 성폭행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고통이 사라질까요? 줄어들긴 하겠지만 사라지진 않아요. 어머니와 언니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사과한들 신니씨의 고통이 사라질까요?”


  여기까지 듣자 과거의 원인을 파헤치지 말라는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저항감이 사라졌다. 억울한 표정을 풀고 다소곳한 경청 모드로 들어갔다.      


  “제가 책을 써보라고 권했을 때 신니씨가 뭘 써야 하냐고 물었잖아요. 그때 제가 뭐라고 말했죠?”

  “육아를 통한 치유요.”

  “바로 그거예요. 치유가 주제이지, 원인 규명이 주제가 아니에요. 원인을 따지는 행위는 치유와 전혀 별개예요. 쉽고 빠르기 때문에 원인을 따지죠. 탓을 하면 노력을 안 하게 되거든요. 어차피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신니씨는 원인을 찾는 일에 과하게 에너지를 쏟고 있어요. 아이에 관한 일에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노력이 아니에요.”


  “그럼 제가 지금의 이런 힘든 성격을 지니게 된 건 원인이 없는 건가요?”

  “‘원인은 없다’가 아니라 ‘원인은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죠. 원인은 분명히 있어요하지만 복합적이라 알 수가 없는 거죠그런데 알 수도 없는 원인을 찾아 헤매는 데에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거죠.”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걸 수용하고, 더 이상 파헤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 같은데요.” 

  “어려워요. 그래서 이걸 다룬 책이 없어요. 여러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의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원망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그래그게 무슨 의미냐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라. 이 과정이 어려워요. 저는 신니씨가 이걸 책으로 썼으면 해요. 벗어남을 책으로.”


  “그럼 언니나 엄마에게 과거의 일을 물어본 것도 잘못된 행동이었네요.”

  “엄마와 언니에게 물어볼 순 있죠. 그런데 아까 신니씨가 자기 입으로 형사가 되어 취조하듯 물었다고 말했잖아요. ‘당신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그 톤은 아니에요.” 


  형사 놀음을 하며 식사 중이신 엄마에게 상처되는 질문을 날려서 식사를 중단하시게 만들고, 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왜 나만 버려뒀냐고 따지고 들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이기심으로 소중한 가족에게 상처를 줬구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나는 상담이 진행될수록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저는 오늘 굉장히 칭찬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바보짓을 한 거였네요.”


  착잡해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을 풀고 온화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이렇게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한방에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남들도 다들 비틀거린다는 김날따 선생님의 말에 움츠렸던 어깨가 다시 살짝 펴졌다. 이럴 땐 귀가 얇아 다행이었다. 


  심리책에 소개된, 과거를 파헤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다들 어린 시절 폭언, 폭력 등 누가 봐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나는 그들이 아니라는 걸. 누군가가 나처럼 어린 시절과 현재의 고통 사이의 인과 관계를 ‘애써 유추’하고 있다면 이제 그 작업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김날따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전자인 ‘심히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진 사람보다 후자인 ‘아리송한 과거’를 가진 나 같은 사람이 훨씬 많다고 했다. 그런데 후자가 전자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들어맞지가 않는 거다. 우린 원인이 너무 복합적이고 불분명하니까!  


  나는 그 과거 퍼즐 맞추기에 장장 10년을 바쳤다. 맞춰지지 않는 퍼즐을 억지로 완성하는 데 에너지를 쏟느라 당장 눈앞에 처한 현실을 볼 여력이 없었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려 애썼다. 그렇게 과거에 파묻혀 오늘을 살지 못했다. 


  

  김날따 선생님과 처음 만난 날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여가시간에는 주로 무얼 하나요?”

  “육아서랑 심리책도 보고, 인터넷에서 아이에 관한 걸 검색해요.”

  “그럼 드라마 같은 건 전혀 안 보나요?”

  “아, 저는 드라마는 거의 안 보는 편인데, 미국 드라마 수사물은 엄청 좋아해요. CSI, NCIS 이런 거요."

  “신니씨는 머리가 좀 쉬어줘야 할 것 같아요. 일단 검색 금지. 육아서와 심리책도 그만 읽고 대신 소설책을 읽으세요. 드라마도 수사물은 그만 보세요. 과거를 분석하고 원인을 밝혀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은 TV 속에만 있어요. 현실은 CSI가 아니에요. 수사물 말고 그냥 평범한 드라마랑 인간극장을 보세요.”  


  이제 생각해보니 김날따 선생님은 처음부터 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here and now


  3호야,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어. 지금, 여기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어. 엄마는 네 덕분에 어제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작가의 이전글 내 성격은 왜 이럴까2(3호 31개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