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미워했던 자신을 안아주다
갑작스러운 나의 공격에 당황한 언니는 울먹이며 말을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어릴 때 너무 힘들었어. 미숙한 부모님은 동생이랑 싸우면 늘 나만 혼냈어.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늘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어. 고등학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친한 친구가 생겼어. 그래서 네가 내가 친구만 좋아한다고 기억하는 것 같아.”
이야기를 계속 나누어보니 언니와 나는 기억하는 과거가 완전히 달랐다. 내 머릿속에서 승승장구한 줄로만 알았던 언니는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다짜고짜 언니를 몰아붙인 게 민망하고 미안했다.
“언니도 그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구나.”
“그런데 난 지금은 괜찮아. 그 시절 때문에 우울하거나 힘들지 않아. 왜냐하면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가정환경 얘기를 하는데 우리 집이 제일 낫더라고. 죽 둘러앉아서 얘기하는데, 어느 집은 다 같이 죽자고 아버지가 농약을 타서 먹였대. 이런 얘기들을 듣고 나니 내 어린 시절 상처가 다 사라지더라고. 다들 그랬구나.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미숙한 부모님이.
그렇지만 지금 부모님을 봐. 얼마나 사랑 많고 인자한 분들이신지. 그걸 보면 옛날에는 부모님이 정말 힘들고 미숙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알 수 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졌어. “
“언니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는 영향을 안 줬구나. 그런데 나는 달라. 힘들다고!”
“그렇다는 건 혹시 네가 좀 타고난 게 있는 거 아닐까? 나는 좀 둔하고, 너는 좀 예민하게 타고난 부분이 있어서……?”
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순간, 내 입에서는 "으악"하고 고통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타고났다는 말이 마치 '넌 답이 없어'처럼 들렸다.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게 이어져온 섬세함의 족보를. 평생 식사를 못하시다 환갑이 넘어서야 갑자기 소화가 잘 된다며 식사를 하셨다던 우리 외할머니. 아마도 음식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으셨을 것이다. 나는 내가 외할머니를 많이도 닮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 어둠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가 무의식 속에 애써 꽁꽁 감춰둔 진실을 너무나도 쉽게 들춰내자 나는 분노했다. 나의 이 절망적인 성격이 DNA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었다.
“언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타고났다는 걸 인정하면 해결책이 없어지는 거잖아! 내가 그렇게 타고났는데 뭘 어떻게 해! 그럼 앞으로도 계속 우울하게 살라는 얘기랑 똑같잖아!”
“아니야, 신니야.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뿐이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닌 거잖아. 네 잘못이 아닌데 왜 힘들게 살아.”
분노와 절망의 눈물을 쏟아내던 중, 갑자기 이 말이 뇌리에 꽂혔다. 눈물이 쑥 들어가고 기분이 얼떨떨해졌다. 생각해보니 예민함은 정말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냥’ 예민함을 타고난 사람, 그게 나였다. 그렇기에 나의 성장 과정 중 도드라진 사건을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한 거였다. 엄마 뱃속에 잉태된 그 순간부터 이미 갖고 있었으니까. 나의 예민함은 잘못이 아닌 기질이었다. 잘못을 꼽자면 타고난 기질을 부정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 계속 발버둥 치느라 평생 자신을 미워한 일이랄까. 혹은 거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웃어줄 여유를 잃은 것,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전까지 나의 사고는 마치 팔이 하나 없는 상태에서 ‘팔이 생기게 해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평생 내게 없는 것에 집착했다. 일정 기간 좌절은 있더라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내 나머지 한 팔과 다리 등 가지고 있는 부분을 더 잘 활용하는 데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가진 것을 더 지혜롭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팔이 하나 없지만 나를 사랑해 (X)
팔이 하나 없는 나라서 사랑해 (O)
예민한 나지만 사랑해(X)
예민한 나라서 사랑해 (O)
예전에 이런 글을 읽었을 때 이해가 안 됐다. 내 상식에는 ‘예민한 나지만 사랑해’가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예민하지 않으면 내가 아니니까. ‘예민한 나라서 사랑해’가 맞다. 그건 예민함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과는 결이 다르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그뿐이다.
3호를 낳은 후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마다 ‘이런 건 내 세대에서 끊어낼 거야.’라며 결의를 다졌다. 나의 내면의 취약함을 내 딸에게만큼은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 다짐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그 말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끊어낸단 말인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꿈꾸니 점점 마음의 병이 깊어진 게 당연했다.
당연히 아이의 기질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말로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라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되도록 엄마 입맛에 맞게 자꾸 ‘고쳐주려고만’ 했다. 내 시각에서 나와 아이는 언제나 개선의 대상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게 당연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갑자기 눈앞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내가 나타났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가 돋친 모습이었다. 그 가시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일일이 반응하며 힘겹게, 아프게 살아왔을 것이다. 남들이 쉬이 넘어가는 일들도 너는 늘 버거워했지. 이제껏 그 예민함을 가지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그렇게 수고했는데도 사랑은커녕 늘 미움만 받아서 평생 외로웠을 자신이 너무 가여웠다. 안쓰러움의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마흔둘에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타고난 예민함과 완벽주의를 지닌 고슴도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가 찾은 ‘진짜 나’의 또 한 가지 모습이 있었다. 바로 ‘애쓰는 사람’이다. 눈물이 멈추자 나 자신이 새롭게 보였다. 그런 타고난 예민함을 가지고도 살기 위해 죽도록 애쓰고 있었구나. 고슴도치 신니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어떤 일에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느껴지면 그게 창피하고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순간순간 올라오는 예민 반응을 없앨 수도 없었다. 나는 예민함을 타고났다. 나의 일부인 그것을 이제는 미워하지 하지 않기로 했다. 예민하게 반응하면 그 느낌을 없애려고 스트레스받는 대신 “아,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네. 스트레스를 받고 있군. 괜찮아. 신니야. 그럼 이젠 뭘 하면 좋을까?” 이런 식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아이의 기질을 언급한 수많은 육아서를 읽었다. 결론은 다 똑같았다. 아이의 기질을 인정해야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어른도 여전히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결국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의 기질도 인정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진실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얻었지만 이런 나의 깨달음의 여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된 건 다음 주의 정신과 상담에서였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