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의 뿌리를 찾아서
나는 평생 내가 싫었다. 내 눈에 비친 나는 언제나 부족한 존재였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쉼 없이 자신을 증명해내야 했다. 공부든 운동이든 여행이든 수다든 뭐라도 했다. 그걸 하고 있는 순간에는 나 자신이 싫다는 느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노력하는 만큼 점수나 자격증 등 가시적인 성과도 따라오니 내가 좀 덜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는 맘 편히 쉬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낮엔 직장에서 그럭저럭 버텼지만, 홀로 있는 밤이 오면 나락으로 떨어질 듯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생활환경이 바뀌거나 바쁘기를 멈추면 더욱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일주일에 스터디 모임을 4개까지 돌린 적도 있었다. 공허,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든 내 가슴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싶었다. 심리를 다루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나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완벽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 불안정 애착 유형이라는 것, 내가 가진 우울감이 거기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보면 책마다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이번만은 다를 거야’라고 유혹하는 날카로운 제목과 광명을 가져다줄 듯한 예리한 목차로 포장되어 있지만, 정작 핵심 내용은 약속한 듯 거기서 거기였다.
** 신니가 발견한 심리서적에서 흔히 제시되는 구원의 6단계 **
<1단계> 성장 과정에서 괴로움 경험
<2단계> 우울하거나 불안정한 성인으로 성장
<3단계> 치료와 상담을 통해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을 돌아봄
<4단계> 그 고통이 내 잘못이 아님을 깨달음
<5단계> 어린 나 자신(내면 아이)을 다독여줌
<6단계> 신세계가 펼쳐짐. 불행 끝, 행복 시작!
수많은 상담과 치료의 성공사례들은 거의 위의 6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차이점이라고는 개개인이 겪은 사례뿐이었다. 책 속의 그들은 대게 성장 과정에서 신체적·정서적 학대, 폭력, 가정불화 등 높은 강도의 힘든 일들을 겪었다. 치료자가 그 기억을 소환하여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해석해주자 마자 그들은 마법처럼 신세계를 찾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게는 그런 결정적인 경험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듬어줘야 마음의 자유를 찾는다는데, 그게 없으니 구원받을 방법이 요원했다. 분명히 강력히 꼬인 매듭이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힘든 성격을 가졌을 리가 없었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시련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어려서 기억을 못 하거나 괴로워서 기억에서 삭제한 것뿐’이라고 결론지었다. 다년간 심리서적을 읽으며 수시로 어린 시절을 열심히 더듬어보았다. 별 소득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마리 찾기에 전념했다.
그러다 풀지 못한 인생의 수수께끼를 품은 채 엄마가 되어버리자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데, 나의 내면을 구원하지 못하면 내 딸이 그 뒤를 이을 것만 같았다. 뒤이어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았을 땐 벼랑 끝까지 내몰린 느낌이었다. 3호를 위해 어떻게든 그 과거의 기억을 찾아내 박살내고 구원받아야 했다.
좀 더 적극적인 포지션을 취하기로 했다. 기억의 단편들을 꺼내보며, 수많은 기억 중 이게 지금껏 남아있는 이유가 있으리라 추측했다. 나는 너무 어렸기에 이를 해석하려면 부모님께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래 망설였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금도 지극정성으로 우리 가족을 보살펴주시는 부모님께 “나 어릴 때 왜 그렇게 했어?”라고 묻는 게 배은망덕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잊고 지낸 엄마의 상처를 건드릴 것도 같아 조심스럽기도 했다.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걸어 몇 가지 나의 궁금함을 전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건을 말하면, 칠순의 엄마는 대부분 기억을 못 하셨다. 내가 이러이러했다 설명을 하면 “그랬구나, 어이구, 어린 네가 힘들었구나. 그래서 이날까지 우울증으로 고생했구나. 엄마가 몰라서 정말 미안하다.” 하고 우셨다. 카톡으로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셨다. 때로는 “아니야,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비 오는 날에 네 발 안 적시려고 업어서 유치원까지 갔어.”라며 억울해하시기도 했다.
이런 반응이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오은영의 「화해」를 읽고 이것이 나이 지긋하신 부모님들 반응의 전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식들이 힘겹게 옛날 얘기를 꺼냈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 부모는 자신의 행동의 ‘의도’만 기억하고, 자식은 ‘행위’만 기억하기 때문이란다. 또 많은 부모가 힘들었다는 자식의 고백을 듣고 사과하는 대신 "그랬다면 이해해라"라고 한다고도 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몰라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해주시니 감사한 일이었다.
어차피 기억을 못 하시니 별다른 소득이 없는데도 나는 자꾸 묻게 되었다. 처음엔 무척 조심스러웠는데 점점 거침이 없어졌다. 마치 내가 형사가 되어 엄마를 취조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어느 날인가 친정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그날도 마침 어떤 신간을 읽고 꼬인 매듭을 찾아 풀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그 책에 무려 오프라 윈프리도 그렇게 했다고 쓰여 있었다.) 마침 엄마도 바로 눈앞에 계시겠다, 주저 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질문을 하면 엄마는 식사를 망치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내 사정이 더 급하다 생각했으므로 배려하지 않았다. (나의 이 이기적 행동에 대해서는 다음 상담일 김날따 선생님의 따끔한 일침으로 반성하게 된다.)
이번 질문의 주제는 ‘엄마가 직장을 다녀서 나에게 소홀했을 것이라는 가설 검증’이었다.
“엄마가 직장을 다닌 게 내가 몇 학년 때부터지?”
“나 중1 때 손에 작게 자해했는데 그거 몰랐어?”
역시나 친정엄마는 몰랐다고 하셨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몰라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우셨다. 그때 내 손바닥에 상처가 심해서 친구들도 다 알았는데 우리 엄마는 왜 그걸 몰랐을까. 직장일로 바빠서 나에게 무심했을 거야. 그래서 외로워진 내가 불안정 애착이 돼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우울증에 걸린 거야. 제법 구색이 맞는 듯했다. 그렇게 자신을 ‘부모의 무관심으로 외로웠던 아이’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춰버렸다.
사실 나의 어린 시절에 딱히 외로움의 기억은 없다. 친구 관계도 평이했고 부모님의 사랑도 받은 것 같다. 사춘기 때 무서운 생각, 무서운 행동을 하긴 했지만 사춘기 전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대화 중 감정에 북받쳐 없었던 일마저 꾸며내고 있었다.
“나는 너무 외로웠어. 엄마는 직장 다닌다고 바쁘고. 언니도 나랑 안 놀아주고. 언니는 친구들이랑만 놀았어.”
설움이 갑자기 언니를 소환했다. 그러자 이제 나의 형사 놀음에 익숙해진 엄마가 언니한테 전화해서 따지라고 말했다. 전화 너머로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눈물이 차올랐다.
“언니, 왜 어릴 때 나랑 안 놀아줬어? 언니는 맨날 친구들이랑만 놀고 나랑 안 놀아줬잖아. 나는 늘 외로웠는데!”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