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엄마 어려운 엄마

일관성 없는 엄마는 어려워요(소소 32개월)

by 신니

남편이 야근인 저녁, 양치질을 끝낸 소소가 입을 헹구며 수도 없이 ‘오그르르 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평소보다 오래 놀자 나는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젖어가는 한 장 남은 수면조끼가 거슬렸다. 다른 거 다 빨아서 저거 젖으면 오늘 밤에 입을 거 없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취해야 할 정답은? 더 젖기 전에 당장 수면조끼를 벗기면 됐다. 그러면 이따 젖은 내복만 갈아입히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귀찮았던 나는 아이의 물장난을 멈추게 한다는 힘든 옵션을 선택하고 말았다.


“소소야~ 이제 그만 하자~ 소소야~이제 그만~ 잘 시간이야~ 소소야~ 옷이 젖잖아~ 소소야~”


한창 재미 붙인 아이가 그 말을 들을 리 없었고 수면조끼는 왕창 젖어버리고 말았다. 머릿속에서는 ‘소소는 잘못이 없어’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시작된 짜증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만해.”


엄마가 갑자기 낮고 싸늘한 말투로 말하자 아이가 멈칫했다.


“내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옷 다 젖었잖아.”


급변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소소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장난을 걸었다. 요새 우리 둘이 자주 하는 말놀이였는데, 소소가 “엄”하면 내가 “마”라고 대답하고, 소소가 “아”하면 내가 “빠”라고 대답하는 놀이였다. 눈치를 보던 소소가 갑자기 “엄”하고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소가 두세 번 더 말했다. 나는 “엄마는 대답 안 할 거야”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풀 죽은 소소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아이를 닦아주고 내복을 갈아입히면서도 나는 화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소소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이상하게 더 화가 났다. 그리고는 소소가 거부해서 올해 한 번도 입히지 못했던 더운 수면조끼를 꺼내 입혔다.


“네가 물장난해서 수면조끼가 다 젖었잖아. 이제 이거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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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목소리로 말하니 소소가 순순히 입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걸 저항 없이 입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제야 아차 싶었다. 침대에 누워 엄마의 냉랭했던 태도에 대해 아이에게 거듭 사과했다. 사랑한다는 말로 마무리하고 안아주었지만 속으로는 애가 타고 있었다. 이제 겨우 붙고 있는 애착이 다시 떨어지진 않을까 두려웠다.


조금 전 욕실에서 나는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지만 선택하지 않았고 싸늘한 태도로 모든 걸 아이 탓으로 몰고 갔다. 회피형 엄마를 탈출하면 평범한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양가형 엄마가 될 위험에 처한 것 같았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다시 빵점 엄마로 돌아갈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양가형 불안정 애착'은 엄마가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오락가락할 때 형성된다. 엄마가 아이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데에 일관성이 없으므로 아이는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키워 자라면서 타인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소를 재운 후 거실로 나왔는데 친정엄마가 조용히 부르셨다. 마주하고 앉으니 엄마가 뜻밖의 말씀을 꺼내셨다.

“너 내가 좀 무서운 엄마지?”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게 정말 헌신적인 분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음, 무섭지는 않은데 어려운 엄마예요.”

“그렇구나. 나도 네 외할머니가 어려웠어. 그러니까 아마 나도 너희를 비슷한 방식으로 키웠을 거야.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지만.”


내 기억 속에 ‘헌신’이라는 두 글자로 남아있는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 역시 엄마에게 어려운 엄마였다는 게 의외면서도 뭔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아까 소소가 양치질할 때 물장난했잖아. 그때 네가 갑자기 “그만해”라고 정색하고 말했어. 그때 소소가 물장난을 그쳤지. 그건 그 세 살짜리가 뭔가 느꼈다는 거야. 엄마가 차갑다는 걸. 그런데 내가 지켜보니 이런 비슷한 상황이 그전에도 몇 번 있었거든. 지난번에 소소가 잠투정하다가 실수로 네 목을 발로 찼을 때도 네가 “야!”하면서 차갑게 애를 노려보더라고.

만약에 이런 일이 반복이 되면 어떻게 될까? 소소가 ‘아, 우리 엄마가 나를 항상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니구나’ 이렇게 느낄 수가 있어. 더더구나 요즘 뒤늦게 엄마랑 애착 만든다고 다정하게 이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막 말해주다가 엄마가 갑자기 싸늘하게 돌변하면 애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그럼 자식이 엄마가 어려워지는 거야. 너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잖아. 나는 너희들에게 잘 못해서 미안하다만, 그래도 우리 소소를 위해 좀 더 언행에 조심하자. “


친정엄마의 솔직한 고백과 조언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잘못인 줄은 알았지만 그게 내가 그토록 집착해온 애착을 망치는 행동이었을 줄이야. 잠든 소소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아서 손으로 쓸어내 주었다.


“소소가 엄마가 화난 걸 알고 말놀이를 걸며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노력을 보였을 때 딱 그때 받아주고 끝냈어야 해요. 그런데 아이의 화해 시도를 거부하고 자기 기분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냉정하게 있다가, 자기 기분 나아지고 나서야 아이에게 다가가면 아이는 혼란스럽죠. ‘내가 잘못했을 때 엄마가 화나도 내가 노력하면 풀리는구나’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의 노력과 관계없이 엄마 기분에 맞추면 언제 엄마가 기분이 풀리는지 모르니 아이는 엄마가 어려워져요.”


오하하 선생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자 양가형 엄마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콩알만큼 생긴 육아 효능감은 다시 소멸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김날따 선생님과 상담하며 살짝 브레이크가 걸렸다.


“신니씨가 예전에는 소소를 회피했는데, 이제는 아이랑 뭐라도 해보려 하니까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학생이 공부를 아예 포기하면 차라리 쉽거든요. ‘난 공부 포기했어. 대학 안 갈 거야’ 이러면 더 쉽죠. 그런데 이제 포기하지 않고 대학에 가려는 마음이 생겼는데, 성적이 원하는 만큼 안 나오니 더 힘든 거죠.”


아, 이게 처음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시행착오로구나. 다시 용기를 얻은 나는 이번 일로 양가형 엄마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갖추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회피형과 양가형 사이에서 아찔한 외줄 타기를 하다가 정신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외줄에 올라타 있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고 흔들림 속에서 또 앞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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