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걱정 알고리즘

아이를 대하는 무한 걱정 알고리즘(소소 33개월)

by 신니

오늘 소소가 놀이터에서 친구를 도와줬다. 소소가 놀이기구에 먼저 올라가 있었고 친구는 밧줄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다 올라온 친구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소소야, 나 좀 잡아줘.”

소소가 친구를 잠시 쳐다보는 사이 친구가 다시 한번 손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소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고 친구는 그 손을 잡고 올라왔다. 나는 폭풍칭찬을 해줬다.

“소소 덕분에 친구가 올라왔네. 소소가 손을 잡아줬구나. 엄마는 용기 내서 친구를 도와준 소소가 자랑스러워.”


이 사건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불과 2주 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소소가 놀이기구 위에 먼저 올라와 있었고, 다른 친구가 밧줄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다 올라온 친구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소소야, 나 좀 잡아줘.”

소소가 반응하지 않자 그 친구가 잡아달라고 한 번 더 말했다. 나도 잡아주라고 옆에서 거들었다. 하지만 소소는 친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고 결국 내가 친구를 잡아올려줬다.


잠시 후 소소와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왜 잡아주지 않았냐고. 소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잡아주기 힘들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답했다.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나는 친구가 도와달라고 할 때 용기 내서 도와주면 서로 더 기분이 좋을 거라고 슬쩍 말했다. 아이에게는 별 거 아닌 척 말했지만 속으로는 계속 이렇게 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일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오늘, 소소는 친구의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그 짧은 사이 용기가 생긴 건지, 성격이 변한 건지, 부탁하는 상대가 달라져서 그런 건지 나는 모른다. 중요한 건 아무튼 친구를 도와줬다는 거다.


집에 와서 친정엄마에게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고 친정엄마는 소소를 크게 칭찬해주셨다. 그리고 아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셨다.

“애미야, 너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오늘 놀이터에서 친구 손까지 잡아줬다며. 그게 얼마나 장한 거냐. 잘 크고 있으니 너는 제발 소소 걱정 그만 좀 해라.”


예전 같으면 나는 이렇게 반응했을 거다.

“아니에요. 지지난주에는 친구가 도와달라고 똑같이 손 내밀었는데, 그땐 안 도와줬단 말이에요. 소소 아직 그런 거 아니야. 아직 그런 거 못한다고.”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소소의 성취를 제대로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맞아요. 소소가 요새 뭔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지난주에는 똑같은 상황에서 친구를 안 도와줬는데, 오늘은 도와줬어요. 그새 성장했나 봐요. 소소의 마음이 계속 크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나 스스로 놀랐다. 소소의 성취를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이것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그동안 내 마음속에 작동해왔던 일련의 알고리즘을 발견했다.


보통 이런 식이었다. 아이의 첫 번째 성취를 나는 얻어걸린 행운쯤으로 취급했다. 칭찬을 해줬어도 당연히 불만과 불안을 감춘 겉핥기식 칭찬이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계속 성장해서 어떤 것을 완전히 잘 해내게 되면 그것을 인정해주고 감사하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 나는 아이의 성취에 익숙해져서 그걸 당연시했고 그렇기에 칭찬해줄 생각도, 감사할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대신 다음 걱정거리(성취목표)를 찾아내 다시 알고리즘 1단계로 돌아갔다. 그러니 소소가 엄마로부터 진심 어린 칭찬과 인정을 받는 일은 아마 드물었을 거다. 나의 이런 마음은 '자식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불만족'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친정엄마에게 놀이터 사건을 전하며 소소의 마음이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잘한 것을 잘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 혹시라도 일회성에 그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겠다는 다짐, 단 한 번의 행운일지라도 마음껏 축하하리라는 긍정적 마음가짐.


돌이켜보니 불만족 알고리즘은 내 평생에 걸쳐 작동해왔다. 스스로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했다.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건 '수많은 성공의 증거'가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작은 성공일지라도 감사할 줄 아는 용기, 그거 하나면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소소 덕분에 엄마 마음이 또 한 뼘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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