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게 된 이유
“부탁이 하나 있어요. 신니 씨 이야기를 책으로 한 번 써보세요. 세상에 분명히 신니씨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요.”
아이가 태어난 지 27개월 만에 처음으로 엄마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던 여름날, 나의 정신의학과 주치의 김날따 선생님은 축하의 악수를 건네며 내게 책을 써보라고 권했다. 참고하라며 지난 10개월치 의무기록 사본도 발급해주었다.
바닥을 쳤다는 의사 선생님의 표현대로 나의 삶은 진정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다. 아이를 낳은 후 시작된 불안은 서서히 몸과 마음을 잠식해갔고, 결국 공황장애가 오면서 일상생활 기능마저 사라졌다. 아이와 놀아줄 수도, 직장에 나갈 수도, 요리를 할 수도 없었다. 늘 불안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아이와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자격 없는 엄마 때문에 내 아이가 불행해질 거라는 공포에 매일 시달렸다. 수많은 육아서를 뒤져봐도 이렇게 어린 아기를 곁에 두고 괴로워하며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겪는 엄마의 이야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유사 사례가 없어요. 저 같은 쓰레기 엄마는 없더라고요. 이래서 책을 써보라고 하신 거 아닌가요?”
정신과 진료일에 농담 삼아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 번도 책 쓰기를 꿈꿔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가슴속에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일었다. 세상에 분명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또 있을 거야. 나 자신이 싫은 느낌. 나만 엄마 자격이 없고 잉여인간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내가 아이의 인생을 망칠 거라는 두려움. 좋은 엄마,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도 간절하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미칠 듯한 그 심정.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숨어서 울고 있을 그들을 위로할 수만 있다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주제부터 정해야 했다. 주제라. 육아 실패? 자존감 제로? 완벽주의? 공황장애? 우울증? 어떤 걸 골라 써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가진 문제가 차고 넘쳤다. 일단 완벽주의를 주제로 목차를 잡아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주제를 차례로 바꿔보았지만 역시나 막혔다. 대체 김날따 선생님은 어떤 생각으로 내게 책을 쓰라고 한 걸까? 의무기록 사본에 줄을 쳐가며 선생님의 생각을 읽어보려 했지만 읽히지가 않았다. 차마 주제까지 정해달라 하기가 민망해서 그렇게 혼자 두 달을 낑낑거리다가 결국 두 손 들고 선생님께 SOS를 치고 말았다.
“제가 걸쳐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서 주제를 못 고르겠더라고요. 제게 책을 쓰라고 권하실 때 어떤 주제로 써보라는 뜻이셨나요?”
“육아를 통한 치유죠.”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육아는 나에게 상상 이상의 고통을 주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서서히 치유되고 있었다. 낮은 자존감, 완벽주의, 우울, 불안 등 오랫동안 나를 짓눌러온 문제들이 아주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일전에 가족들이 엄마 자리를 감당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나를 보며 내가 더 건강해지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거라 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죽지 못해 살고 있고 자식은 못난 어미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이걸로 내가 성숙해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불을 끄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차츰 눈이 어둠에 적응해가듯 내가 지나온 암흑의 시간은 내게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 힘이 내 삶의 주춧돌이 될 터를 잡아가고 있는 참이었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소소를 낳은 후 밑바닥을 향해 치닫던 시간부터 다시 바닥에서 1cm쯤 반등하기까지의 기록이다. 그 1cm를 올라오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발버둥 쳐야 했다. 언제나 정상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는 난생처음으로 바닥 위 1cm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소소는 네 살이고 나는 정신과 상담 3년 차에 들어섰다.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이제라도 부족하게나마 부모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지금이라도 나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