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우주

엄마의 오만

by 신니
어떤 노래가 잘됐을 때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 작곡가와 가수와 제작자와 팬들과 여러 가지 상황이 모여서 잘된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가끔 내가 너무 잘해서 성공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것의 함정이 뭐냐면,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다 나 때문인 거 같더라고요. “내가 이번에 가사를 이상하게 써서 그런 거 같아”하고 속상해했더니 남편이 의외의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오만이야” 하는데 너무 위로가 됐어요. ‘그래 맞아. 내가 하나 못했다고 큰일이 되고 말고 할 게 아니지’ 그 이후로 뭘 해도 내 탓을 심하게 하지 않고 잘 됐을 때도 너무 오만해지지 않고 적절하게 파도 타듯이 살아가게 된 거 같아요.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엄마로서 자존감이 바닥인 내가 소소의 좋은 점을 내 덕이라고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대신 순간순간 아이의 어떤 점이 부족한 듯 느껴질 때는 다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내가 잘못 가르쳐서, 내가 공황장애라서, 성격이 이 모양인 내 유전자를 물려줘서. 물론 이런 면이 아이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으나 모든 걸 '전부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단순한 자책을 넘어 오만일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늘 부족한 엄마라며 자신을 작고 초라하게 느끼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오만이라는 두 글자는 가슴으로 훅 들어와 머리를 타고 올라가서 뒤통수를 팍 치더니 내게 아이의 자발성과 자생력이라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타인의 영향이 아닌 자기 내부의 힘에 의해 사고나 행위를 이루는 자발성,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가는 자생력.


소소가 걸음마를 떼고 나선 놀이터에 매일 데리고 나갔다. 그때 나는 단순히 대근육 발달을 위해 나가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대근육 자극을 훌쩍 넘어 아이가 접하는 거대한 세상이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공기의 온도, 뺨을 스치는 바람, 어제보다 조금 더 벌어진 꽃봉오리, 어제와는 다른 구름모양, 어제와는 다른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스쳐가는 이웃들, 산책하는 강아지, 개미와 공벌레, 배달 오토바이……. 단 한 번의 외출에도 수 만 가지 다른 자극이 찾아와 아이의 우주에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그럼 아이는 타고난 기질 같은 내적인 요소에 외적인 자극을 조물조물 버무려 자신의 우주를 확장시켜 왔으리라.


예전에 '엄마는 아이의 온 우주'라는 말을 듣고 정말 감동적인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말의 감동이 이어지려면 숨겨진 대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엄마가 아이의 우주부터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


"걘 내 작품이야."

실제로 의사인 아들을 둔 한 어머니가 예비 며느리에게 자신의 아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이 대화를 직접 들은 친구가 내게 전해줬다. 이건 마치 발달의 주체가 아이 자신이 아니라 엄마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럼 아이는? 엄마가 공부시키고 의대 보내며 작품 만드는 동안에 아들은 30년 동안 버튼을 눌러야만 움직이는 로봇처럼 살고 있었던 걸까. 아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았을 엄마가 그 노력과 의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인정해줄 수 있단 말인가. '내 덕'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집 아들은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정녕 몰랐을까.


처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땐 착각이 대단한 엄마라고 욕했지만 결국 나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이든 내 탓이라고만 생각한 것 역시 아이의 자생력과 자발성을 무시한 행위였으니까.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엄마는 너에게 세상 모든 걸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너는 너라는 우주 안에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구나.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점점 더 감이 잡혀간다. 마음 같아선 잘했을 땐 날 닮아서, 못했을 땐 남편 닮아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다 부질없다. 잘했을 때도 못했을 때도 누구 탓인지 분석하지 않기. 아이의 자발성, 자생력, 속도를 믿어주기. 뭘 해도 내 탓을 심하게 하지 말고 잘 됐을 때도 너무 오만해지지 말고 적절하게 파도 타듯이 살기. 너라는 신비하고 완벽한 우주를 위해.


엄마의 오만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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