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에 주목하니 아이가 달리 보였다(소소 34개월)
“소소야, 이따가 고모부 만나면 어떡하지?”
“음, 좋아.”
“좋아? 우와, 우리 소소는 고모부가 좋구나.”
“응, 고모부 좋아. 고모부가 반하실 걸?"
“고모부가 우리 소소한테 반하신다고?”
“응. 안아줄 거야. 안아주면 반하실 걸?”
“우와, 소소가 고모부 안아줄 거야?”
“응.”
우리가 시댁에 가면 늘 가까이 사는 고모네 가족이 건너오는데 소소는 그중 고모부를 무척 무서워한다. 고모부의 목소리만 들려도 울었다. 그런 소소가 시댁 가는 길에 저렇게 호언장담을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고모네 가족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소소는 고모부가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황급히 방으로 도망갔는데 고모부가 “소소야”하고 부르자 더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렇게 시댁에 머문 3일 내내 고모부가 보이면 울었다.
이번엔 미술수업 가는 길의 대화다.
“소소야, 미술 선생님 무서워?”
“아니.”
“그럼 오늘 미술 선생님이랑 울지 않고 수업할 수 있어?”
“응.”
“그럼 오늘 소소랑 선생님이랑 둘만 수업하고 엄마는 밖에서 기다려도 돼?”
“응.”
“정말? 소소 혼자 수업할 수 있어?”
“응.”
소소는 엄마의 물음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니라고 하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므로 저 대답들은 모두 진심이다. 지난주 첫 미술수업 때 소소는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대차게 울어댔다. 여자 선생님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계속 울어대서 마지막 10분 정도만 엄마 품에 안긴 채로 수업을 들었다. 그랬는데 이번엔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니 정말 해낼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소소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건물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고 울고 달래기를 반복하다 이번에도 10분 정도밖에 수업하지 못했다.
소소와의 일상에서 이런 풍경은 익숙하다. 고모부, 미술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 아빠, 이모부, 아파트 환경미화 여사님 등 수많은 이들이 소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기에 누군가를 무서워하며 우는 일도, 울지 않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자지러지는 것도 나는 그저 익숙하게 넘길 뿐이었다.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하원 할 때 선생님이 소소가 울었다고 귀띔해 주셨다. 오늘의 대상은 어린이집을 소독하러 오신 할머니였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어도 기분은 덤덤하다. 또 그랬구나. 크면 좀 나아지려나. 집으로 가는 길에 살짝 말을 꺼내보았다.
“소소야, 오늘 어린이집에서 울었어?”
“소독해주시는 할머니가 무서웠어. 그래서 가만히 서있었어. 뒤돌아서.”
뒤돌아 서있었다니. 선생님께 들은 얘기와는 좀 달랐지만 어쨌거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 혼자 뭔가를 시도한 것 같아 기특했다. 그 점에 대해 용감하고 지혜로운 행동이었다며 한바탕 칭찬을 쏟아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너, 노력하고 있었구나?
생각해보니 소소는 그동안 정말로 노력하고 있었다. 안아줄 거라는, 울지 않을 거라는 매번 수포로 돌아간 다짐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오늘은 울지 말아야지.’, ‘오늘은 만나면 인사해야지.’ 아마 매번 마음속으로 이렇게 결심했을 것이다. 다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을 뿐이다. 울지 않겠다는 약속은 허세가 아니라 의지였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그동안 전혀 몰라줬다니.
심지어 매번 그렇게나 많이도 울면서도 소소는 상황을 피하지 않았다. 고모부가 무서우니 할머니 집에 가지 않겠다거나 미술 수업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지 않았다. 대신 이겨내겠다며 매번 의지를 다졌다. 소소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용감하고 멋진 아이였다. 한 번 부딪쳐 보겠노라고. 번번이 실패했지만 그래도 또 도전하겠노라고. 그걸 엄마가 아이가 34개월 된 오늘에야 깨달은 것뿐, 소소의 노력은 쭉 현재 진행형이었다.
갑자기 눈앞의 ‘겁 많은 소소’가 ‘의지의 소소’로 둔갑하는 마법이 일어났다. 눈빛이 결연하고 걸음걸이마저 야무져 보였다. 마법을 부른 주문은 '수리수리 마수리'가 아닌 ‘과정’이었다. ‘울었다’는 결과만 두고 따져 보았을 땐 그저 ‘겁 많고 낯가림이 심해 잘 우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결과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두니 ‘용감하고 노력하는 아이’로 180도 달라져 보인 거다.
입으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떠들었지만 지금까지 나는 철저히 결과 지향적으로 살아왔다. 당연히 육아에도 이런 성향이 그대로 반영됐다. 소소가 책을 많이 읽을 땐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는지를 검색했다. 내게 중요한 건 언제나 해피엔딩일 뿐, 과정은 스쳐가는 길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소소 덕분에 과정의 가치를 처음으로 제대로 새기게 되었다. 소소가 나의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