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아이를 보는 법

비교를 멈췄더니 아이가 보였다(소소 35개월)

by 신니

추위가 물러난 3월 중순의 오후 놀이터가 북적인다. 어린이집 친구들도 거의 다 놀이터에 나와 있었다. 순간 긴장이 됐다. 소소의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오늘은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마음속으로 각오를 했다.


낮에 있었던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과의 상담 내용을 떠올렸다. 소소가 아직도 또래에 비해 자기표현이 적은 편이라고 말하니 원장님은 부모가 아이에게 모델링이 되어주는지를 생각해보라고 했다. 여전히 등하원 때 마주치는 엄마인 내가 표정이 없고 말투도 단조롭단다. 그러면서 엄마가 기쁠 땐 크게 표현하고, 화가 났을 땐 부드럽게 말하지 말고 정말 화가 난 표정을 보여주라고 했다. “저도 제가 경직되어 있다고는 느끼는데, 그게 잘 안 바뀌네요”라고 변명하는데, 나도 못하면서 그동안 아이에게 바라고만 있었구나 싶어 씁쓸했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만큼은 아이와 정말 적극적으로 놀아주고 싶었다. 원장님의 말대로 표정과 말투도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최대한 반응을 해주려 노력했다. 친구가 동선에 걸리면 상대와 소소에게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보기도 했다. 마음먹고 아이에게 집중하며 놀다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보다 또래 친구들이 놀이터에 많았는데, 보통 그런 날이면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다른 아이들, 다른 엄마들과 비교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마음이 덜 힘든 듯했다. 왜일까. 대체 무슨 차이일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데 소소가 미끄럼틀을 한 번만 더 타고 가겠다 하더니 정말 한 번만 타고 일어섰다. 약속을 지켜준 소소가 대견해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안아주었다. 그러다 오은영 박사가 눈을 보고 말하라고 했던 게 떠올라 다시 한번 소소의 눈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그때였다. 방금 놀이터에서 스트레스가 적었던 이유를 알았다. 오늘은 내가 소소만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나의 시선은 늘 타인을 향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남의 집 아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엄마랑 어떤 식으로 노는지, 엄마는 아이에게 어떻게 호응하는지를 열심히 관찰했고 그것을 나와 소소가 도달할 기준으로 삼았다. 눈은 다른 애들과 엄마들을 살피기 바쁘고, 마음은 비교하기에 바쁘니 당연히 내 자식과 놀아주고 반응해줄 여유가 없었다. 나름 놀이터에서 매일 두 시간씩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영혼이 아이 곁에 없었던 거다.


RT 수업에서 아이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며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웠지만, 놀이터에서는 아이가 막 움직이고 뛰어다니니 그걸 다 쫓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은 덜 뛰어다니면서도 다 애랑 잘 놀아주는 것 같았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엄마들은 자기 아이를 보고 있었던 거다. 나도 오늘 소소만 보고 있으니 비교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내 페이스대로 쉬다 뛰다 하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가 어린 널 참 많이도 외롭게 했구나. 남편의 복직 후 내가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다닌 지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길 잃은 아이처럼 덩그러니 있었을 소소를 찾아가 안아주고 싶었다. 1년 치의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올 것만 같아 하염없이 아이의 등만 쓸어내렸다.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어서 앞으로 남은 수많은 날들에 너만 바라보겠노라고 속으로 자꾸 약속할 뿐이었다.



놀이터에서 살아남는 법 1.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의 의지와 노력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