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nd now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 말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럼 내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내 눈에 비친 나는 늘 부족하고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은 존재였다. 그런 마음을 가진 채로 엄마가 되자 위기감이 느껴졌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데, 나의 내면을 구원하지 못하면 내 아이가 그 뒤를 이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다.
심리서적에는 대개 성장 과정에서 학대, 폭력, 가정불화 등 높은 강도의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치료자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어’라고 해석해주자마자 마법처럼 신세계를 찾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열심히 어린 시절을 더듬어봐도 특별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언니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그냥 네가 좀 예민하게 타고난 부분이 있어서 힘든 거 아닐까?”
타고났다는 말이 마치 '넌 답이 없어'처럼 들렸다. 이 절망적인 성격이 DNA에 새겨져 있다면 해결책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나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울며 따졌다.
“아니야, 신니야.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것뿐이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닌 거잖아. 네 잘못이 아닌데 왜 힘들게 살아.”
어? 분노와 절망의 눈물을 쏟아내던 중 갑자기 눈물이 쑥 들어가고 기분이 얼떨떨해졌다. 생각해보니 예민함은 정말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냥’ 예민함을 타고난 사람, 그게 나였다. 갑자기 눈앞에 웅크린 내가 나타났다. 남들이 쉬이 넘어가는 일들도 너는 늘 버거워했지. 이제껏 그 예민함을 가지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그렇게 수고했는데도 사랑은커녕 늘 미움만 받아서 평생 외로웠을 자신이 너무 가여웠다. 그렇게 처음으로 모난 자신을 인정하고 안아주었다.
정신과 상담일에 나는 드디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지만 주치의 김날따 선생님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어쩌다가 문제의 답은 맞게 썼어도, 풀이 과정이 잘못됐어요. 신니씨가 과거를 돌이켰을 때 답이 나왔나요? 안 나왔잖아요. 성폭행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고통이 사라질까요? 줄어들긴 하겠지만 사라지진 않아요. 정신과 상담의 기본은 here and now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거예요. 반대는 there and then 그때 거기로 돌아가는 거고요.
신니씨가 가야 할 방향은 치유이지, 원인 규명이 아니에요. 쉽고 빠르기 때문에 원인을 따지죠. 탓을 하면 노력을 안 하게 되거든요. 어차피 문제의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신니씨는 원인을 찾는 일에 과하게 에너지를 쏟고 있어요. 아이에 관한 일에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노력이 아니에요.”
“그럼 제가 지금의 이런 힘든 성격을 지니게 된 건 원인이 없는 건가요?”
“‘원인은 없다’가 아니라 ‘원인은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죠. 원인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복합적이라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알 수도 없는 원인을 찾아 헤매는 데에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거죠. 현실은 CSI가 아니에요.”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걸 수용하고, 더 이상 파헤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너무 어려운 일 같은데요.”
“어려워요. 그래서 이걸 다룬 책이 없어요. 여러 요소에 의해 만들어진 지금의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원망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그래, 그게 무슨 의미냐, 지금 내가 뭘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라. 이 과정이 어려워요.”
아무리 해도 맞춰지지 않는 과거 퍼즐 맞추기에 나는 10년을 바쳤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번이고 과거로 돌아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려 애썼다. 아이에게도 어떤 걱정스러운 부분이 보이면 원인부터 파헤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과거에 파묻혀 오늘을 살지 못했다.
here and now가 팝송 가사처럼 계속 귓가에 맴돈다. 나는 이제 과거로의 여행을 줄이는 연습을 한다. 미래로 떠나는 여행 역시 노땡큐다. 그저 아이와 함께 하는 오늘 이곳에 한줌의 햇살과 웃음이 스미기를 바라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