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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Oct 30. 2021

거울 속 응원 자판기

나를 사랑하는 용기 (소소 32개월)

   2020년 12월 3일 역사적인 날이다. 방금 최초로 거울 속 나에게 말하고 왔다. 사랑한다고.


  김날따 선생님이 육아서, 심리학 책 읽지 말고 잘 쉬기나 하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제목에 낚여 심리책 한 권을 꾸역꾸역 읽고 있었다. 이걸로 다음 상담에서 혼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훔쳐 읽듯 찔끔찔끔 읽었다. 애착 유형 어쩌고, 성격 유형 저쩌고, 마치 누군가가 나를 보며 쓴 것 같아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책의 80%쯤 읽었을 때였다. 다시금 마음의 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렇게 나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서 뭐할 거야? 이미 지난 10년간 분석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잖아.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이젠 알잖아.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 이런 거 읽을 시간에 잠이나 자고 애랑 놀아줄 생각이나 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 하라고! 


  1년 넘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김날따 선생님의 조언이 이제야 강한 파도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내가 지식화로 버틴다는 선생님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이젠 나를 찾는 여행은 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응만 하자. 


지식화  
 : 불편한 감정을 처리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 불안하거나 괴로운 감정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일반적, 추상적 지식에 몰두하여 그것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예) 연인과 헤어지고 슬플 때 헤어지게 된 원인을 분석하여 설명 


  단호한 결심과 함께 과감히 책을 덮으려는 순간, 결론 부분만 남기고 덮으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대충 읽고 완독만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건성건성 넘기며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하필 내가 싫어하는 레퍼토리가 나와 버렸다. ‘거울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보세요’ 에잇, 그냥 아까 그만 읽을 걸. 


  ‘거울 보고 웃어라', '거울 보고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라’ 살면서 이런 말을 한 번쯤 접해본 사람들이 많을 거다. 보통 행복해지고 싶을 때 이걸 해보라고 했던 듯하다. 오랫동안 불행한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 헤맨 나지만 이건 해보지 않았다.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실은 좀 멋쩍기도 했다. 이번엔 어쩌지? 해볼까 말까?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해볼까? 여태 이 책을 읽으며 내 소중한 시간을 쓴 게 아까우니 이거라도? 에이, 이제까지 평생 안 해 오던 걸 뭘 이제야 하겠다고…….


  갈팡질팡하다가 결정을 못 내리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연예기사에 내가 좋아하는 개그맨 윤정수 이야기가 보였다. 그가 ‘아이콘택트’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였다. 아이콘택트? 눈 맞춤? 거울을 보면 내 눈을 보게 되겠구나. 내가 나랑 아이콘택트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 



  눈 맞춤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잠시 후 나는 욕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내가 왠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염색이 반쯤 빠진 부스스한 머리, 심한 병을 앓고 난 듯 건조하고 어두운 낯빛, 푹 꺼진 두 볼,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가, 갈라지고 부르튼 입술. 이 모든 쓸쓸함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실제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몹시 지쳐 보였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말을 할 용기가 당장 사라질 것만 같아 얼른 두 눈을 찾았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금세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나는 용기가 사라질 새라 재빨리 말했다. 


  “신니야, 사랑해.” 


  너무 빠르고 너무 작게 말한 것 같았다. 너무 작아서 ‘나’가 못 들었을까 봐 염려되었다.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번 말했다. 


  “신니야, 사랑해. 너는 너무 수고가 많았어. 너는 잘하고 있어.” 


  파이팅의 말을 하긴 했는데, 말하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지쳐 보여 말에 기운이 안 실렸을 것 같았다. 좀 웃어볼까? 웃는 표정을 지어보았다. 갈라진 입술이 아파 입을 다 열 수가 없어서 새 주둥이 같은 입모양이 연출되었다. 그래도 아픔을 참고 친정엄마처럼 앞니가 훤히 보이게 웃어보았다. 입술의 고통 때문인지 웃는다기보다는 일그러진 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나름 웃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번엔 더 힘주어 말해보았다.


  “신니야, 너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너는 앞으로도 잘할 거야. 너는 소소를 잘 키울 거야.” 


  말을 마치고 거울 속 눈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얼굴이었지만 두 눈만은 만화 속 여주인공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반색했다. 그래, 저 반짝이는 눈 좀 봐. 나 아직 안 죽었어! 눈빛이 살아있잖아! 그건 마치 사그라져가는 모닥불에 한 가닥 살아남은 불씨와 같은 희망이었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욕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했다. 스스로에게 고백도 하고 덕담까지 건넨 기분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신과 전문의가 자신의 임상 경험상 이 방법이 효과가 좋았다고 했으니 기대감도 생겼다. 나는 돌아와 거울 앞에 다시 섰다. 기대 이상으로 살아있는 눈빛이 너무 마음에 들어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다.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걸 뿌듯한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반짝거림은 내 눈에 고인 눈물이 빛에 반사된 것이라는 걸.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됐지. 내 눈빛 살아있고 나도 아직 살아있다! 신니야, 사랑해. 너는 소소를 잘 키울 거야!  



  그날 이후 종종 거울 속의 내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럼 순간적으로 기분이 전환되면서 정말 누군가가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욕실에 공짜 응원 자판기를 한 대 들인 격이랄까.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됐다는 뜻이라던데 나는 살기 위해 안 하던 짓을 했다. 그 대가는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기분 좋은 산들바람 한 줌이었다.


  처음 거울 속 내게 말을 건지 거의 일 년 가까이 지난 오늘 거울 속 내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어색하지 않은 염색 라인, 컬이 잡힌 머리, 살이 붙은 얼굴, 부르트지 않은 입술. 생각지 못한 뚜렷한 회복의 징후들에 사랑한다는 말을 꺼낼 틈도 없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도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소의 끝없는 재잘거림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노래처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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