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니 Nov 02. 2021

육아 천재의 비결

 (소소 32개월)

  친정엄마는 육아의 달인이다. 아이의 관심을 끄는 재미난 말투와 환한 미소는 기본이요 손끝에서 모든 것이 교구로 변신하고 모르는 옛날이야기가 없다. 소소는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화면 앞을 떠나지 않는다. 화면 속 할머니와 30분씩 노는 동안 남편과 내가 편히 밥 먹을 시간을 벌기도 했다. 조카도, 소소도 할머니와 놀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엄마와 통화를 하며 앞으로 아이와 놀 때 fast fail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고, 최대한 많이 망쳐보고 방법을 찾겠다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 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셨다.


  “네 언니랑 네가 나보고 애랑 잘 놀아준다고 하잖아. 그런데 나도 이렇게 하면 반드시 애가 좋아할 거라는 걸 알고 하는 건 아니야. 이렇게 하면 좋아할까, 도움이 될까 하고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 던져보는 거지.”


  으잉? 그동안 난 친정엄마가 육아 천재라서 이렇게 하면 아이한테 통한다는 확신으로 꽉 차 있을 줄 알았는데. 


  “영상 통화할 때도 있잖아. 나는 미리 나름 여기서 리허설을 해본다. 할 말을 적어놓고. 소소의 관심을 끌려고 준비를 한다. 하나(조카) 어릴 때도 그렇게 했지. 해보면 어떤 거는 반응이 영 아닌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별 거 아닌데도 깔깔깔 넘어가는 게 있더라고. 나는 실제로 데리고 놀 때도 그렇다. 그러니 너만 특별히 잘 못 놀아주고 어떻게 놀아줄지 모르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영상 통화 전에 대본을 미리 적기도 하신다는 열정에 깜짝 놀랐다가 얼마 전 우리 집에 와계실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소가 어린이집에 가고 없는 시간, 방에서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친정엄마가 소소의 동화책을 실감 나게 읽는 연습을 하고 계셨다. 나중에 보니 강조해서 읽어주고 싶은 부분에 따로 표시를 하거나 메모까지 해두셨다. 

할머니의 메모

  

  그전에 영상 통화를 할 때의 열성적인 모습도 떠올랐다. 눈이 오면 대야에 눈을 퍼 와서 화면 앞에서 눈사람을 만드셨고, 커다란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펄럭 펄럭 흔들거나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셨다. 생선이나 나물 다듬는 과정을 비춰주시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상황극을 하시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아이디어와 열정에 감탄할 뿐이었고, 친정엄마를 육아 천재라고 생각했다. 천재라 머릿속에 육아 매뉴얼이 들어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통화를 하며 그간의 일들이 ‘천재라서’ 일어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엄청난 노력가일 뿐이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그 99%의 노력을 인정하는 대신 천재라는 이름으로 폄하했다. 의식적인 게 반, 무의식적인 게 반이라고 생각한다. 반은 의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간 친정엄마의 노력들이 눈에 보이는 순간들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겐 핑계가 필요했을 거다. 할머니는 천재, 나는 바보. 천재가 아니라 노력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되니까. 그럼 나도 해야 하니까. 그건 너무 부담스럽고 어려우니까. 


  부끄러운 진실은 인정했고,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노력형 천재마저도 어떻게 하면 아이가 좋아할지를 몰라 이것저것 시도해본다고 한다. 결국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당연한 건 없었다. 육아 천재와 내가 똑같이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약간 생기기도 했다. 앞으로 나도 소소와 놀 때 아무 거나 던져보기로 했다.


 한 달 후 (소소 33개월)


  친정엄마가 일주일간 다녀가셨다. 한 달 새 나의 육아 능력치가 상승했는지 예전엔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 나는 친정엄마가 소소와 놀 때 정말 '끝없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옛날이야기도 들려줄 때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아무렇게나 내용이 바뀐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니 내가 그동안 아무리 간절한 눈으로 관찰해도 흉내를 낼 수가 없었던 거였다. 매뉴얼이 없는 게 매뉴얼이었다. 그냥 아이 옆에서 끊임없이 뭐라도 하는 것, 그게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탁월한 육아의 비결이었다. 친정엄마는 그냥 누워서도 소소의 엉덩이를 아무렇게나 발로 툭툭 치고 발가락으로 간지럼을 태우셨고 소소는 그걸 좋아라 했다.


  아이와 있을 때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그거라면, 나도 한 달 전부터 조금씩 시도하고 있는 거 아니던가. 혹시 요즘 예전보다 육아가 조금 덜 힘들게 느껴진 게 이 때문일까. 내가 엄마로 조금 성장한 건 아닐까. 나와 함께 있을 때에도 할머니와 있을 때처럼 한없이 깔깔거리는 그런 날이 올까. 살포시 스며든 작은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지는 밤이었다.


가면 쓴 할아버지와 목걸이를 흔드는 할머니


작가의 이전글 거울 속 응원 자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