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엄마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소소 31개월)
11월의 어느 날 아침 8시쯤. 남편은 이미 출근해 나갔고, 다니러 오신 친정엄마가 부엌에서 뚝딱뚝딱 요리를 하고 계셨다. 암막커튼이 있는 안방은 아직도 컴컴했다. 소소가 움직이는 기척에 나도 잠이 깼나 보다.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땐 소소가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가고 있는 참이었다. 잽싸게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까치발을 들어 힘겹게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면서 힘차게 외치는 말 “할머니~ 할머니~!”
이어지는 크고 경쾌한 할머니의 목소리. “오! 우리 소소 일어나셨어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머니 찾았어요? 아이고, 예뻐라. 아이고, 예뻐라. 할머니는 우리 소소가 너무너무 좋아요”
과장 어린 말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할머니가 소소를 환한 미소로 맞이하며 꼭 안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소소가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꽉 차게 사랑받고 있구나.’
평소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은 사뭇 다르다. 보통 소소가 나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럼 “엄마, 일어나. 엄마, 일어나”를 외치며 엄마 깨우기를 시도하지만 나는 “알았어, 알았어”하면서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다. 결국 깨우기를 포기한 소소는 거실로 나가 혼자 놀았다. 내가 뒤늦게 잠에서 깨어 방에서 나가보면 소소가 혼자 독서나 놀이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몇 시부터 일어나 혼자 놀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그럼 그때부터 일찍 깼으니까 배가 고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져서 얼른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어쩌다가 소소보다 먼저 일어나는 날에는, 아이가 깰 새라 숨도 안 쉬며 살금살금 아침밥을 먹고 휴대폰을 보다가, 시간이 되면 아기 상어 같은 동요를 크게 틀어놓고 집안일을 했다. 그러면 소소가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그럼 “우리 소소 일어났구나”하고 한 번 쳐다보며 말한 뒤 소소의 아침밥을 준비했다.
풀타임으로 격하게 사랑해주시는 할머니가 오신 후의 상황과 비교하니 평소 우리 집의 아침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아침에 썰렁한 거실에 혼자 나와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혼자 노는 데에 익숙해진 세 살배기. “엄마, 엄마” 아무리 불러도 침대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엄마. 아빠의 복직 후 엄마의 체력이 달린다는 핑계로 그렇게 쭉 지내고 있었는데……. 너는 그 긴 시간 동안 아침부터 하루가 꽉 차게 외로웠겠구나, 우리 아가.
아침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지금은 일상에 지쳐 서로 일어나는지 자는지도 모르지만, 신혼 때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때가 있었다.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발바닥에 뽀뽀하고, 흘러내린 이불을 가슴까지 꼭 덮어주면 얼마나 포근하고 행복한 느낌이었나. 피로감과 더 자고 싶다는 욕망이 저 멀리 달아나게 하는 향긋하고 은은한 느낌.
나는 그걸 받아봤으면서, 그 충만한 느낌을 알면서 왜 아이에게 알려줄 생각은 못했을까. 지인이 중학생이 된 딸을 아직도 꼭 안아주며 깨운다고 이야기해줬을 때 부러우면서도 왠지 어색할 것 같고 내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참 못난 엄마다. 하지만 이제라도 어떻게 해서든 소소에게 새로운 아침을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다음 날부터 모든 체력을 모아 무조건 아이보다 먼저 일어났다. 아이를 깨울 땐 시끄러운 음악을 트는 대신 마사지를 해주기로 했다. 신생아 마사지를 배울 때 강사가 아기부터 노인까지 이 세상에 마사지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나도 예전에 마사지를 받으면 나긋나긋한 손길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잠을 깨울 때도 발끝부터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면 기분 좋게 잠에서 깨지 않을까.
나긋한 목소리로 “아이코, 우리 소소 잘 자고 있구나~” “마사지 마사지 마사지 다리 마사지 마사지” 이렇게 운율을 넣으며 다리부터 시작해서 머리까지 올라오는 순서로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하면 아직 잠에서 못 깨 눈도 못 뜬 아기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눈이 쉽게 떠지진 않는다. 그럼 발바닥부터 이마까지 전신에 뽀뽀를 하며 계속 마사지한다. 그럼 소소가 조금 있다가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나선 “또 해주세요” “허리 마사지해줘” “다리 마사지” 이렇게 엄마에게 귀여운 주문을 넣는다. “마사지하면 기분이 좋아요?” 물으니 “좋아요”라고 답한다.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서 입에서 예쁘다,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참을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완전히 잠에서 깨 스스로 일어나 앉는다. 아이의 몸짓이 가뿐해 보인다.
아직 자기 전에는 이렇게 하지 못한다. 자기 전에는 책을 읽어주는 등 하는 일이 많고 아직 요령을 익히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재우는 시간마다 어쩔 줄 모르는 카오스에 돌입한다. 잠이 전혀 오지 않는 것 같은 아이를 잡고 내가 느끼기에도 확실히 괴상한 타이밍에 어색하게 아이를 껴안고 ‘잘 자, 사랑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내 아이가 매일 아침만큼은 ‘난 사랑받는 사람이야’라고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