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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니 Aug 27. 2021

수학 머리 조작 사건

엄마의 욕심이 부른 거짓말(3호 16개월)

  3호를 낳고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과 육아 모임을 만들어 매주 만났다. 가서 보니 3호가 신체발달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게 나를 초조하게 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언어 쪽으로 관심이 많은 편이라 신체 발달은 느려도 말은 혹시 빠르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있었다. 친구가 공유해준 '파이팅'이라고 또렷하게 말하는 7개월 아기의 영상을 본 후, 말 빠른 애들은 7개월에 그 정도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지나고 보니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 하지만 기대와 달리 3호는 그 개월 수가 넘어가도록 파이팅은커녕 엄마 소리도 하지 않았다. 말도 빠른 게 아니로구나. 아쉽기는 해도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아마 이때까지는 내가 여유가 있었던 듯하다.


  3호가 5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복직을 했고 남편이 1년 6개월간의 육아 휴직에 돌입했다. 아기를 돌보다가 고질병인 허리가 완전히 나가버릴 것을 우려한 나름의 계산이었고 수년간 격무에 시달린 남편에게 잠시 전환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복직으로 이젠 육아 모임에 나가질 못하니 비교대상이 없었다. 빠른 건지 느린 건지 모르는 채로 아무튼 아이는 쑥쑥 자라고 있었다. 

                    


  3호는 누워서 지낼 때부터 책을 읽어주면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10개월 때 유명한 프뢰벨 전집을 사줬는데, 한 달이 지나자 노래를 불러주면 해당하는 책을 스스로 꺼내 왔다. 머릿속에선 이 시기 모든 아기들이 천재성을 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슴속에선 혹시 내 아이가 똑똑한 걸까 하는 기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기대감은 지금 아이에게 중요한 뭔가를 부모가 놓치고 있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뭘 많이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압박감으로 변형됐다. 나만 빼고 다른 부모들은 전부 아이를 빵빵하게 지원해주는 것 같았고, 똑똑하게 태어난 아이가 나 때문에 둔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나 남의 집 사진에 우리 집에 없는 책과 장난감, 교구를 보면 조바심이 일었다. 이런 생각을 자제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돌이 지나자 말이 터지기 시작한 3호는 15개월이 되자 제법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졌다. 15개월에 3호가 말할 수 있었던 단어는 양말, 안경, 앉아, 할머니를 포함해 45개 정도였다. 그때까지 내겐 여전히 7개월짜리가 파이팅이라고 말하는 게 빠름의 기준이었으므로 3호가 말이 빠른지 몰랐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육아 모임 멤버와 마주쳤다. 3호가 매일 ‘안경’과 ‘양말’이라고 말한다고 하니 말이 빠르다고 했다. 그날 저녁 육아 모임 단톡방에서 그 엄마가 “3호가 안경과 양말을 말한대요.”라고 말했다. 친절한 멤버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칭찬 세례가 이어졌고 받침이 있는 단어를 벌써 말한다며 똘똘이라고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3호가 말이 빠르구나. 받침이 있는 단어는 어려운 거구나. 그리고 그때 처음 느꼈다. 어깨에 뽕이 솟아오르는 것을. 그 치솟은 어깨뽕, 그게 문제였다.

     

  거짓말로까지 치닫은 엄마 욕망의 과열


  빠른 애들로 검색하니 20개월 전에 이미 글자를 익힌 아이도 있었고 엘리베이터 숫자를 줄줄 읽는다는 애들도 보였다. 그중 나는 3호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 엘리베이터 숫자에 꽂혀버렸다. 엘리베이터를 매일 타지만 3호는 버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얘가 왜 딴 건 다 말하면서 숫자는 안 하지? 수학 머리도 중요한데...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숫자=수학 머리’라는 이상한 논리가 생겼다. 


  왠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3호가 언어뿐만 아니라 수학 머리도 있다는 것을. 차마 없는 일을 지어 말할 수는 없으니, 반칙을 선택했다. 가르쳐주는 것은 뭐든 외워버리는 영특함을 이용해 숫자를 강제로 주입시키기로 한 것이다. 페이지마다 동물그림과 숫자가 작게 적힌 책이 있었는데 3호는 그 그림을 좋아했다. 그 책을 계속 읽어주며 나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어댔다. “이건 1이야. 이건 2야. 이건 3이야.” 이걸 무한 반복하자 3호는 드디어 혼자 숫자를 읽어냈다. “일, 이, 삼, 사, 오”. 그 모습을 놓칠 새라 얼른 동영상으로 찍었다. 당장 남편과 양가 부모님, 육아 단톡방에 영상을 전송했다. “3호가 오늘은 숫자를 읽네요. 요새 숫자에 관심을 갖더라고요”라는 거짓말과 함께. 


  엄마의 욕심과 비교가 과열을 빚어냈고 과열은 거짓말로 이어졌다. 요즘 나는 그 과정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더 이상 아이의 거짓성취를 꾸며내지도, 아이에게 지식을 주입하지도 않는다. 숫자도, 영어도 어린이집에서 배워오면 박수만 쳐준다. 간지럽히고, 까꿍놀이하고, 이불 속에 숨고, 인형놀이를 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시간을 채운다. 그래도 비교하는 마음이 종종 찾아오므로 남들보다 빨리 갈 필요도, 같이 갈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자꾸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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