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상담에서 두 가지 실수를 하다(소소 21개월)
당신이 소개팅 자리에 나왔다. 그런데 상대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제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나라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오늘 소개팅 망했네.’ 슬프게도 바로 그 황당한 소개팅 상대의 역할을 내가 해왔다. 아이 태어난 이후로 쭉.
다음 학기 어린이집 입소를 위한 상담차 어린이집을 처음 방문했다. 원장님이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나는 원장실에서 어린이집 운영과 생활에 대한 간략한 안내를 들었다. 그동안 소소는 아빠와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탐색했고 가끔 엄마가 있는 원장실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문제는 마무리 단계였다. 방문을 마치며 현관으로 향할 때 나는 마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원장님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 그런데 짧은 시간 보셨지만 저희 아이 어때 보이세요?”
속내는 어린이집 원장님은 전문가일 테니 잠깐 봤더라도 아이를 한눈에 파악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내가 예상한 대답 선택지는 아래와 같다.
① 애가 낯을 많이 가리네요.
② 이 정도면 낯가림이 없네요.
③ 애가 똑똑하네요.
④ 인사할 때 밖에 못 봤는데 어때 보이냐니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거야.
(사실 당시 예상 답안에 ④번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④번이 정답)
나는 전문가가 보기에도 낯가림이 심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또는 어려운 낱말들도 구사하니까 똑똑하다는 평가도 내심 기대했다. 나의 기습 질문에 원장님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노련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와 함께 와서인지 이 정도면 안정적으로 보여요. 근데 아이가 말을 참 잘하고 똑똑해 보이네요.”
결국 낯가림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다만 엄마의 귀에는 후반부의 “똑똑해 보이네요.”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이성은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갑자기 원장님에게 그간 소소가 보인 총명함에 대해 구구절절 자랑하기 시작했다. “소소가 동물의 종류를 다 말하더라고요.~~~ 솰라솰라~~~”
그렇게 잠시 동안 나만의 초대받지 않은 자랑 파티가 열렸고, 그걸 듣고 있던 원장님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다행히 기억이 안 난다.(기억했으면 꿈에 나왔을 듯) 집 나갔던 이성이 일부 돌아온 건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 있을 때였다. 아차, 내가 처음 본 선생님에게 묻지도 않은 자식 자랑을 늘어놓았구나! 창피한 마음에 최대한 빨리 소소의 신발을 신겨 인사도 대충 하고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아이를 셋 키운 선배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만행을 고백했다. 선배는 깔깔 웃으며 신발장에서라도 깨달은 게 어디냐며 위로해주었고 나는 폭풍 치는 마음을 겨우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한 가지 실수만 깨닫고, 다른 실수에 대해서는 자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고작 1분 남짓 본 선생님에게 내 아이를 평가해달라고 요청한 것, 그게 진짜 실수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는 자꾸만 성급하게 내 아이를 이리저리 정의 내리려 하고 있었다.
내 아이는 문제가 없다. vs. 내 아이는 문제가 있다.
내 아이는 이걸 잘한다. vs. 내 아이는 이걸 잘하는 게 아니다.
내 아이는 똑똑하다. vs. 내 아이는 똑똑한 편이 아니다.
그때는 내 아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너무나도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핑계야 그럴듯했다. 아이의 어떤 문제든, 재능이든 조기에 개입할수록 효과가 좋다는 것. 그렇다면 부모가 빨리 개입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어떤 문제 혹은 재능이 있는지 빨리 알아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기다리는(?) 그 문제/재능’이 명확하게 보이지가 않으니 답답했다. 그 모든 걸 파악하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렸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때의 나는 어떻게든 아이의 장·단점을 규명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얼른 결론을 짓고 아이를 위하여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대비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헛꿈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이후 나는 두고두고 조급했던 이때의 자신을 책망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냥 미숙한 초보엄마가 나름 의욕이 넘쳐 잘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여전히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 안달 난 마음조차 서툰 사랑이었다는 걸, 2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알았다.
2019년 10월 17일 신니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의무 기록 중에서
환자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 ○ 아니면 X
환자의 질문 패턴 : 선생님, 이거예요 아니면 저거예요?
⇒ 인생에 답이 존재한다고 전제를 깔고 살아가는 느낌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설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