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산업군으로 이직했지만 계속된 고민
근로복지공단에서의 계약직 근무를 마치고 나서
2019년 연초에는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엄마랑 강릉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갔다 왔고
친구랑 일본 오키나와로 3박 4일 여행도 다녀왔다.
토익도 835점으로 갱신했다.
그렇게 맞이한 2019년 상반기에 난 꽤 행복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부터 한국공정거래조정원까지
여러 개의 기관 서류전형에서 합격한 것이다.
비록 필기전형에서는 아쉽게도 모두 탈락했지만,
스터디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취업준비를 하며
최종합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고,
한국사도 다시 시험 봐서 1급으로 취득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2020년 하반기까지 필기에서 계속 불합격했다.
통합전공부터 단일전공까지 다 준비하려던
내 욕심이 과했던 탓이었을까.
그동안 회사 다닐 때 모아놨던 돈으로 버텼는데
거의 안 남은 통장 잔고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그렇게 맞이한 2021년,
나는 29살이 되었고 퇴사한 지 3년 차가 되었다.
필기 공부에 지쳐서 2월에 오픽을 준비했다.
토익 점수 유효기간 만료가 다가온 이유도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관광재단 채용 공고를 보았다.
기간제 근로자였지만 12월까지 근무할 수 있었고,
학부시절 관련 대외활동을 수행했던 경험과
공단에서의 경력도 활용할 수 있는 직무였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지원을 했다.
1명 뽑는 자리여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서류 전형에서 합격하게 되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떨어졌고, 인연은 끝난 줄 알았다.
마침 다른 기관에서 단기간 근무를 하게 되었고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약 한 달 뒤,
뜻밖에도 근무 제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기존에 합격한 사람이 개인사정으로 퇴사하게 되면서 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2021년 3월, 재단 계약직으로 이직했다.
재단에서의 근무는 빠르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프로젝트 단위로 정규직과 계약직 모두 협업했고, 매주 팀 회의를 통해 각자의 역할을 공유했다.
내가 맡았던 일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관광업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신규 프로젝트들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신청서를 검토하고, 문의를 응대하고, 평가위원회와 컨설팅을 준비하고,
회의운영경비를 위한 품의서를 작성하고,
지원금 집행을 지원하는 등
익숙한 듯 새로운 업무를 수행하면서
혼자가 아닌 팀으로 일하면서
책임감이 무엇인지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다시 공공기관 신입 채용이 시작되었고,
근로복지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또 다른 갈등을 안겨주었다.
현재의 업무를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마음과,
다시 정규직에 도전해야 한다는 조급함 사이에서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필기시험에서는 탈락했고,
한동안 나를 더 깊은 생각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관광재단에서의 시간은 분명 의미 있었다. 복지와 사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일하는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고, 계약 기간 동안 모은 천만 원은
이후의 선택을 위한 작은 안전망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곳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마음도 좋지만
관광 분야에서 일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마다
늘 한 단어 앞에서 멈칫했었던 적이 있다.
“계약직입니다.”
이 말은 직무보다 먼저 나를 설명했고,
처음에는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경력을 쌓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규직 실패한 사람의 변명인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야,
계약직이라는 말을 설명으로만 두지 못 하고
평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왜 그 단어 하나로
내 가능성까지 함께 줄여버렸을까.
나는 언제부터 직업의 형태로
나의 가치를 판단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달라지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이후의 선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