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의 설렘과 압박, 버틴다는 의미
대학교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공무원 합격만이 답일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불합격 이후 아쉬움이 컸으나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보낸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어느새 친구들은 하나둘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는 이야기,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준비 중”이었다.
수도권대학교 인문계열 졸업,
토익 770점, 한국사 2급,
홍보 대외활동 한 번,
다수의 아르바이트 경험,
이력서를 작성하면 나를 설명할 문장은 적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취업준비를 소홀히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자존감은 소리 없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버틸 수 있는 자리를 먼저 떠올렸다.
불확실한 가능성보다 예측 가능한 시간을 원했다.
공기업을 준비하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활용능력 1급을 취득하고
취업스터디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봄에 시작한 준비는 가을까지 이어졌는데,
그 무렵 근로복지공단 계약직 채용공고를 보았다.
세 자릿수의 대규모 채용이었다.
1년이라는 계약기간, 정부의 신규 사업 관련 업무,
무경력이었던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린 결과, 합격했다.
기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동안의 어두웠던 긴 터널을 지나서 마주한
따뜻한 햇살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018년에 나는 근로복지공단 계약직으로
설렘반 기대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마냥 따뜻하지는 않았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고 업무 강도도 높았다.
특히 악성민원은 정말이지 너무 까다로웠다.
항의 전화를 한 시간 넘게 이어가시는 분도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분도 있었다.
매일 그런 민원이 반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마음의 에너지가 크게 소모되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중간에 퇴사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지금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무경력으로 입사한 나에게 1년의 경력은
사회인으로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버텼다.
일이 힘들어도, 마음이 흔들려도
하루하루를 쌓아갔다.
물론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다.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을 때,
월차를 모아서 짧지 않은 여행을 다녀왔을 때,
지원금이 도움 되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받았을 때,
사회초년생이던 나에게 이러한 시간들은
다시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을 채우고 퇴직금을 받으면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작은 신뢰를 느꼈다.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스로를
조금은 인정해 줄 수 있었다.
2026년이 된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많이 서툴렀고 자주 흔들렸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 커리어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되었고,
커리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첫 직장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첫 직장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