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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2. 국숫집 이층 방에 사는 처자

by juyeong

그해 겨울밤은 유난히 추웠다.

그래도 밤이 나았다. 해가 없다는 핑계가 있으니.

빼앗긴 조국은 한낮에도 춥고 어두웠다.


나라가 없는 데 사고팔 물건이라고 있을까. 시장 상인들은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입김에 몸을 녹이는 게 일이었다.

민형이가 상해에서 겨울옷을 보내왔어. 민우는 시험 잘 봤다며. 관이는 공부 못해도 애가 착하니께…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려나? 어제 아주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던데.

자식새끼 얘기로 한참을 보내다 할 말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입에 오르는 건, 국숫집 이층 방에 사는 처자였다.


어느 날, 짐가방을 들고 와 셋방살이하는 고운. 동네에 뜨내기가 하나둘이 아닌데, 그녀가 시장 사람들의 호기심을 독차지한 까닭은 조가비처럼 다문 입 때문이었다.

고운 그 이름도 민우가 끈질기게 물어 겨우 알아낸 것이었다.

국숫집 둘째 아들, 고등보통학교에 다니는 민우는 누나 부르며 고운을 따랐다. 집 떠난 민형에 마음이 허전해서였을까? 아무튼.


-매일 백화점에 가서는, 대체 뭘 그렇게 사는 거야?

-몰라. 돈 많은 집 딸내민가 보지?

-그런데 셋방 살일 해?

-사연이 있는가 벼.

-염병. 쫓겨날 짓을 했겄지.


관의 아버지 승면이 다짜고짜 침을 뱉었다. 몸져누운 관이를 보고 오는 모양이었다.

전일, 관이는 일본인 순사 히로시에 맞았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잘못한 건 없었다. 히로시 그놈이 쌍놈이었다.


-등신 같은 놈. 그걸 맞고만 있었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이 이 꼴이 되다니. 승면은 입이 썼다. 말이 뾰족하게 나왔다.

관이는 힘겹게 답했다. 아니라고.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애처로이 뱉었으나 듣는 이가 없었다고. 고운이 저를 쳐다보고 지나갔다고.

고년이 무슨 사연을 지녔거나 말거나 승면의 생각은 하나였다.

염병. 아주 염병이다.


그때 관이의 애원을 들은 고운이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꼭 쥐고 있었던 건 아무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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