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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편지

23. 사랑 손님

by juyeong

-안녕하세요.


나는 금년 열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숙희이고요. 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보고 싶은 우리 오라버니와 나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오라버니가 읽어준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떠올리자면, 이런 말들로 나를 소개해야 했던 거 같은데. 코우즈키 어르신 집에 처음 온 날, 내가 한 말은 ‘안녕하세요.’가 전부였다.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만,

안녕! 나는 영자, 숙자, 말자, 수많은 이름이 귀에 쏟아졌다. 한꺼번에 다가온 많은 얼굴과 이름이 도저히 외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코우즈키 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집사 아재는 내 입을 다물렸다. 네. 나는 찜찜했지만 그렇겠노라 했다.

그리고 정말로 어르신은 나를 데리고 종종 밖을 나갔다. 예쁜 옷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사진을 찍고, 사람들에게 나를 딸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외출을 다녀온 날이면 아이들은 바깥에 대해 시시콜콜 물어봤다. 우와. 사탕이네. 어르신께서 사탕을 잔뜩 사주신 날,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는데


-저기 이거 먹을래?


싫어. 서연이는 싫다고 했다.

싫어. 싫어요.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니에요. 라고 나도 그렇게 얘기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어르신께서 딸이 아닌 나를 딸로 대동하는 건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기 때문일까?


-그래도 이상하죠? 어르신 딸은 내가 아니라 언니잖아요.


다른 아이들이 청소하는 사이, 나만 출입을 허락받은 삼층 복도 끝방. 침대에 누운 언니의 몸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물그릇에 수건을 적시는 그때, 콩.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아무도 없었고.


-언니가 낸 거예요?


다시 들어와 언니에게 물었지만, 언니는 늘 그렇듯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팔목에 꽂힌 주사에선 약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전에 집사 아재, 부엌 아주머니의 말을 귀동냥했을 때 언니는 쌀집 여학생에게 맞아 쓰러졌다고 했다.


-너이 아버지 같은 놈들이 나라를 팔아먹어서, 그래서 쪽바리 군인 때문에, 우리 엄니는 쌀 파는데도 밥 한술 제대로 뜨질 못하고!


어르신과 시장을 가로지르는 길에,

고 작은 게 집 앞에 와서 어찌나 악을 쓰던지, 일 칠 줄 알았다는 집사 아재의 말이 떠올랐다. 지나치며 쌀집을 힐끔 보자, 가게에는 정강이가 푸르딩딩한 주인 아주머니 홀로 계셨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왔니?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르신 집에 새로운 얘기가 돌았다.

내가 코우즈키 애첩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삼층 복도 끝방에서 진짜 딸 봤다니까? 쟤도 그렇게 얘기했어. 그럼 쟤는 뭔데? 왜 잘해주겠어?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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