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편지

64. 메리 크리스마스

by juyeong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숙희는 책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그간 오라버니가 돌아와 소공녀 읽어줄 날만 기다렸는데

지난번 연못에 빠진 책을 말리느라

처음으로 넘긴 표지

숙희는 그제야 장장이 오라버니가 남긴 그림을 보았다.


오늘 다시 연 책,

아버지와 떨어진 소녀가

아버지 사망 소식이 담긴 편지를 받고

하녀가 되었다

아버지의 친구가 그녀를 찾아내 집으로 돌아가는,

달빛에 빛나는 그림 속 얼굴들을

숙희는 바로 알아보았다.


소녀 얼굴은 숙희의 것이었고,

아버지의 얼굴은 오라버니 경수였다.


- 숙희야!


대문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숙희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 오라버니!


숙희가 경수에게 달려갔을 때,

그는 사라져 있었다.

꿈이었다.

아주 달고 씁쓸한 꿈.


- 오라버니. 보고 싶어.


다음 날,

숙희가 대문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

누군가 숙희를 지나쳐갔다.


- 죄송합니다.


잘못한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건네는 인사에,

그 누군가는 멈칫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숙희가 뒤돌았을 때, 그녀는 제 옷 주머니에서 뭔가 느꼈다.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개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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