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누
삼층 복도 끝방에 들어선 코우즈키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 아버지!
자신을 향해 웃으며 뛰어오던 딸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웬 놈에게 맞아 쓰러진 후로
길고 긴 잠을 자고 있으니
- 딸아. 언제 일어날 거니.
누가 여기 더 있는지 모른 채
코우즈키는 간절히 속삭였다.
딸아.
조선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가 그러더구나.
너를 깨우기 위해 많은 이들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단다.
눈에 거슬리던 조선 양반을 칼로 썰어버리고
그 아들놈 경수를 전장에 총알받이로 보냈단다.
그래도 깨어나지 않는 네가 원망스러웠어. 원망스러웠지.
얼마나 더 죽여야 네가 깨어날까?
생각을 하고 또 하다 보니
그래. 고작 한두 놈 바쳐 네가 눈을 뜬다면
그건 너의 귀함을 낮잡아보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더구나.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죽일 수 있어.
이제 그놈 딸 숙희는 네 대신 경성역에서 특별 기차 태워 위안부로 보내려는데
그때는 다시 눈을 떠줄래?
침대 밑에 몸을 숨기고 이 모두를 들은 누,
숙희는 숨이 막혔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우리 오라버니를 사지로 내몰고,
내 목숨도 거두려 하는구나.
아버지.
나는 어쩌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