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마지막 전화
침대를 빠져나온 숙희가 잠시 머뭇거리다 수화를 들었다.
- 숙희야.
고운이었다.
언니. 부르는 숙희의 목이 메었다.
- 괜찮아.
잠시 후,
심부름할 구실을 찾다 찾다 못 찾은 숙희는 몰래 코우즈키 댁 뒷마당으로 향했다.
- 여기 어디라 했는데.
좁은 방에 모인 소녀들은, 아주 가끔, 밤에 담 넘는 얘기를 했다.
누구도 한 번도 숙희를 끼워주지 않았지만
숙희는 오늘만큼 어떡해서든 이 집을 빠져나가야 했다.
뒷마당 담의 가장 낮은 부분도 숙희의 키보다 세 뼘은 더 컸다.
내가 저걸 뛰어넘을 수 있을까?
숙희는 코우즈키 집 뒷문에서부터 발을 굴렀다.
언젠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고무줄을 잡고, 숙희에게 뜀박질을 가르쳐줬는데.
이얏!
어림없지.
쿵. 담벼락에 부딪힌 숙희가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눈물이 고였지만, 울고 있을 새가 없었다.
고운이 기다렸다.
고운이 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어떡해 저걸 넘는담.
그때, 숙희의 눈에 빛이 보였다.
개구멍이었다.
이 집에서 가장 왜소한 숙희는 잔뜩 웅크려 담을 통과했다.
밖은, 겨우내 볼을 아리게 한 찬 바람이 멎어 있었다.
눈도 없고.
곧 봄이 오려나.
시장통 쌀집과
과일 가게,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나는 떡집을 지나
정신없이 도착한 백화점 건물 앞 공중전화 상자.
숙희는 상자 안에 들어가 수화기에 손을 올렸다.
제게 전화를 걸던 고운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까, 마지막 통화에서 언니가 말했지.
숙희야,
나는 네가 내 편지를 가진 걸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