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의 생략과 가치 없는 소비의 반복
과정의 생략이 낳은 병폐
이제는 남녀노소를 가지리 않고 누구나 유튜브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있어 스마트폰과 영상이용은 일상을 넘어 거의 '필수'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최근에는 유튜브 쇼츠, 틱톡 등이 젊은 층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은 점점 더 과정을 줄이고 짧고 빠르게 정보와 흥미를 얻는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정보를 얻는 측면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책을 뒤지고 검색을 할 시간에 AI를 통해 단숨에 원하는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되니 시간을 정말 효율적으로 쓰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찾고 뒤지는 '과정'의 생략은 우리에게 뜻밖의 필요한 정보와 경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연스레 쥐어지던 작은 지혜의 선사를 앗아간다.
예를 들어 현대에도 나무꾼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나무꾼이 어떤 산에 자신이 원하는 나무를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헤매고 메모해 가며 그 과정에서 각종 동물을 대처하는 법, 새로 알게 된 나무, 비교적 안전한 길, 자신의 체력, 도끼질 요령 등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면, 현대의 나무꾼은 이미 주어진 정보들로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원하는 나무가 있는 산의 정확한 위치를 향해서 딱 필요한 길로만 아주 순탄하고 빠르게 가서는 효율적으로 나무를 해올 것이다. 물론 시간과 체력의 측면에서 후자의 나무꾼은 훨씬 이득을 보았다. 하지만 경험과 지혜의 측면에서 전자의 나무꾼은 후자가 결코 얻을 수 없는 다양하고 깊은 '과정'을 얻었다. 물론 뭐가 맞고 틀리고는 없다. 정보란 상황에 따라 전자와 후자의 모든 경험이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작물의 소비에 있어 과정의 생략은 분명한 마이너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특히 영화의 경우 단 2시간 남짓한 시간을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공들여 촬영하고 편집하고 또 그것을 자르고 줄이고 결정하여 만들어 낸 2시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짧은 재미를 위한 쇼츠나 틱톡을 넘어서 장시간을 봐야 하는 드라마나 영화까지 줄여서 보는 것은 작품을 수박 겉핥기로 느끼는 것이며 그렇기에 봐도 본 것이 아니고, 엄밀히 말해 그 작품에 대한 관심과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런 제목의 책도 있다)과 유튜브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30분 정도로 요약해 주는 것(이러한 사람들의 경향을 맞춰 콘텐츠로 제작한 것이 '진용진의 없는 영화'다)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창작물의 가치는, 그들에게 딱 그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는 것이다. 즉, 시간 날 때 대충 소비할만한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만만한 문화생활, 영화
영화는 너도 나도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가장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만만하고 대중적인 문화생활이다. 그러다 보니 취미로 영화를 본다는 것을 사람들은 굉장히 쉽게 생각하고 '그게 과연 취미인가?' 하는 수준으로 생각한다. 취미라는 것의 사전적 정의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취미라는 것도 재미를 붙이고 깊게 들어가다 보면 누구나 즐기는 것을 넘어 욕심을 내고 더 잘하고 더 잘 알고 싶어 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들 때 비로소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 있어 취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에게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은 취미 생활이다. 그렇기에 재밌고 작품성이 있는 영화, 내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게 만드는 영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찾고 소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필자가 내 돈 내고 찾아가 스크린에서 봐온 한국 영화의 열에 아홉은 모두 내 기준에서 가치가 없는 영화였다. 필자의 기준에서 가치가 없다는 것은 ("한국영화가 싫은 이유"라는 글에서도 어느 정도 피력했지만) 영화적인 재미가 없고, 뻔하고, 억지적인 요소가 많고, 작품성과 내용의 깊이가 없고, 보는 사람이 오글거리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즉, 수년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한국영화의 대부분이 이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거장이라고 불리는 감독의 영화 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내 돈과 시간을 내서 한국영화를 보러 영화관으로 찾아가지 않는다(솔직히 최근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도 실망이 매우 컸는데, 이동진 평론가의 말대로 거장은 명작을 탄생시킨 그 순간에만 거장인 것이지, 그 감독이 계속해서 훌륭한 명작만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필자와 달리 수년간 계속해서 한국영화를 재밌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은 영화에 대한 글을 쓰지도 않고, 영화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생각 없이 편하게 영화를 보는 자체만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누군가와 영화를 보는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영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형태를 당연히 존중하며, 비난할 자격은 물론 없다. 하지만,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 없이 영화를 소비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필자와 같이 영화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적과 같다. 그들의 소비가 또 다른 비슷한 질 낮은 영화들을 재생산해내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더 이상 한국영화에 돈을 쓰지 않는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성이 뛰어난 외국영화나 한국영화를 개인적인 공간에서 보고 또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있다.
가치 없는 과정이 반복되는 이유
앞서 언급했던 '과정의 생략'과 '가치 없는 영화의 소비'가 낳은 결과가 바로 '가치 없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문제이지만, 특히 한국인의 특성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면서 한국에서 그 부정적인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문화,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해', 눈치문화, 냄비근성은 스스로가 좋아하고 또 스스로에게 맞는 선택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분별의 과정을 생략하고, 이거 유명하면 우르르 저거 유명하면 우르르 냄비처럼 순식간에 들끓었다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현상에서 남긴 소비가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원리대로 또 다른 냄비근성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가치 없는 선택지를 재생산해낸다. '빨리빨리', '남들 할 때 나도'라는 한국인들의 특성상 과정의 생략과 빠른 이득은 한국인들에게 더욱 치명적인 선택지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필자 역시 한국인이다. 남들 하는 유행에 관심이 가고, 숏츠를 보며 생각 없이 시간을 소비하는 순간도 많다. 알게 모르고 남 눈치를 보며 획일화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의 취향과 취미가 확실하고, 그렇기에 생각 없이 우르르 몰리는 것을 참으로 싫어한다. 특히 영화를 보는 순간과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정말로 그러한 특성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가치 없는 영화와 가치 없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솔직히 말해서 최근 한국영화들을 보면 영화의 내용 즉, 영화를 소비하는 과정 자체가 똥이기에 그 똥을 경험하는 것이 과정의 생략과 다를 것이 하등 없다고 생각한다. 즉, 과정을 생략하지 않아도 얻는 것이 없으니, 과정의 생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아, 딱 한 가지 한국영화를 보면서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정말 다시는 한국 영화를 영화관에서 돈 내고 봐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지혜와 경험이다.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폰의 순간적 흥미에서 도무지 헤어나질 못하며, 어휘력 역시 상당히 떨어지고 있다(성인 역시 마찬가지지만, 성인보다 충동성과 억제력이 부족한 아이와 학생들은 어느 정도이겠는가). 이는 과정의 생략이 낳은 수많은 병폐 현상의 징조 중 하나일 뿐이다.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마음을 공부하고, 철학을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너무나 귀해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