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의 형(型)을 지닌 기본기
형(型)을 중시하는 한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은 중화권(한문이 대표적인 예)과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자란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들이자 이웃나라인 만큼 문화교류도 많고 엇비슷한 점도 많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확연히 다른 나라들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예절, 식사, 집단주의 성향, 형식 등이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중에서 오늘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형식 즉, 형(型)에 관한 부분이다. 형(型)은 어떠한 모양이나 형태를 잡는 틀을 얘기하는데 즉 일반적으로 말하면 겉모습이나 외형 등을 말한다. 쉽게 말해 '보여주기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형(型)이 중요해지게 된 이유는 집단주의적인 문화와 유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집단주의의 특성상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고, 어쩔 수 없이 남의 눈을 의식하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여기에 유교까지 더해지다 보니 어떤 규범과 절차가 더욱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유교의 안 좋은 점만 쏙쏙 빼다 박아서 이상한 문화가 생성된 점이 참 애석하다).
이렇게 형(型)을 중시한 문화는 가정이나 일상을 넘어 학교와 스포츠 등에서도 적용되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 태권도의 품새, 일본 가라데의 카타, 중국 우슈의 투로이다. 품새, 카타, 투로 모두 각 무술의 형(型)을 익히기 위한 움직임이며, 이를 겨루는 대회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필자가 아는 한 서양에는 이렇게 형(型)을 익히고 그것을 겨루는 대회가 없다. 즉, 이는 실전성을 배제하고 보여주기식 동작만으로 겨루는 동양 무술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복싱의 특징
일본의 복싱과 한국의 복싱은 대체 무슨 차이점이 있길래 지금에 이르러서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인프라의 차이에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프로복싱의 인기가 매우 뜨거우며, 그렇기에 선수 육성을 위한 체육관이 다양하고 선수풀이 넓다(학교 동아리나 동네체육시설처럼 생활체육기반이 잘 되어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듯하다). 반면 한국의 복싱은 아마든 프로든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인 경우가 왕왕하며, 그렇기에 선수들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얕고 지연학연의 문제에서 비롯된 편파의 우려가 깊다.
하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복싱 인프라의 문제가 아니라 복싱에서 형(型)을 중시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복싱과 한국의 복싱은 훈련방식도 비슷하고 형(型), 즉 깔끔한 자세를 중요시하는 부분이 동일하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 복싱은 문자 그대로 보여주기식이지만, 일본 복싱은 기본기 강화에 초점을 둔다는데 있다(혹자의 말대로 일본복싱은 한국복싱과 가장 비슷한데 굉장히 잘하는 것이 특징이다).
"복싱은 잽으로 시작해서 잽으로 끝난다" "앞손이 세계를 제패한다" 이 복싱의 명언들은 모두 기본기를 가리키고 있고, 현재 세계챔피언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의 복서들(그중에서도 p4p랭커인 이노우에 나오야와 나카타니 준토)을 보면 기본기인 스텝, 잽, 원투가 굉장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잽과 원투가 얼마나 간결하고 깔끔한지 잽 싸움에서 지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원투가 주무기이다. 그리고 이 잽과 원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확실하고 깔끔한 인스텝 동작과 종적인 풋워크에 있다. 스텝을 통한 거리조절의 완급이 잽과 원투를 최강의 기본기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일본의 복싱이 형(型)을 중요시하며 정교한 기본기를 반복 숙달하는 이유는 안정성 있는 밸런스에서 최적의 타이밍에 강력한 파워를 구사하는 복싱을 완성시키기 위함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