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의 전적은 3전 3패다. 패배는 나에게 도전의식과 익숙함을 심어주었지만, 당연하게도 영광이나 승리의 기쁨은 심어주지 못했다. 그렇다. 패배는 썩 달갑지 않은 선물이다. 패배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한마디로 그냥 참가상)을 3번 받아 보면 모종의 비참함을 느낄 수 있다(그냥 졌으면 아무것도 안 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다). 링 위에서 심판이 나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니.. 이제 이만큼 도전했으면 됐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이기고 싶다는 열망이 언제나 내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주저함이 생긴다. 패배의 두려움 때문이기보다는, 시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혹시나 얻게 될 부상 때문에 주저함이 든다. 시합을 준비하고 시합을 치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희생과 시간을 요구하기에, 그것이 끝났을 때 얻게 될 결과가 아쉬움 가득한 패배와 평생 몸에 남게 될 부상이라면 아무리 패배가 주는 긍정적인 요인을 생각해 봐도 그 보상에 있어서 만큼은 승리만 못한 점이 사실이다.
패배 끝에서 승리하는 자들
생활의 달인 회 백반의 달인 김정호
4전 5기로 유명한 홍수환 전 챔피언은 프로선수로 처음 활동할 당시(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4전 3패 1무의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4경기 동안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으니 복싱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친구의 말 한마디에 다시 용기를 내 시합을 뛰었고 결국엔 세계챔피언이 되는 기염을 토해냈다. "야 수환아, 너는 맞든 지든 폼이 되게 좋잖아! 계속해봐!"
얼마 전 아는 지인을 통해 유도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하고 유도에 임했지만 생활체육 시합에 나갈 때마다 패배했다고 한다. 무려 7전 7패. 그리고 최근에 나간 대회에서 드디어 1승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지금도 열심히 유도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생활에 달인에 출연했던 구두닦이의 달인 박일등과 회 백반의 달인 김정호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일등 달인은 프로선수 시절 전적이 10전 9승 1패였으며, 1패는 급성 맹장염으로 인해 시합을 못 나가게 된 기권패였다. 반면에 김정호 달인은 프로선수 시절 10전 9패 1승의 전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바로 이 1승이 박일등 달인의 기권패로 인한 승리였다. 기묘한 인연과 그들의 전적도 놀라웠지만, 나는 특히 김정호 달인의 전적을 보며 의구심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연속된 9패 속에서도 계속해서 경기를 뛰게 만든 것일까?
최근 복싱장에 운동하러 가면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랑 함께 시합을 나가 똑같이 3전 3패를 하던 한 회원님이 이번 시합에서 승리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이 누구보다 성실히 복싱을 하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기쁨을 느꼈다. 연이은 패배 속에서 마침내 얻게 된 승리의 기쁨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는 아직 그 기분을 알 수 없다.
용기란 나의 어떤 것을 잃는 것
수요웹툰 '격기 3반'의 한 장면
만약 남들이 무언가를 하는 당신을 보며 용기 있는 자라고 말해도, 실제로 당신이 느끼기에 그것이 전혀 두렵지 않고 딱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다. 용기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기에 용기 있는 일일 때 가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자에게 번호를 물어보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대방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나는 복싱을 통해 두려움을 느끼고 경험한다. 링위에서 스파링을 할 때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감당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쿨하게 링 위로 올라가지만, 매번 올라갈때마다 두렵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윗글에서 언급했던 인물들은 모두 패배 속에서도 끝까지 앞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승리를 따낸 자들이다. 나 같은 3전 3패를 넘어서 7전 7패, 9전 9패를 하고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가짐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확실한 것은 이들이 패배를 거듭할수록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무뎌졌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나와 달리 계속해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에는 다른 무엇인가를 잃을 용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나는 내 신체적 정신적 희생과 부상을 무릎 쓸 용기가 부족했다.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몸의 근육과 살이 빠지고 몸에 다른 상처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나와 달리 무엇가를 더 잃을 용기가 있는 자들이었다.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을 용기를 내야 하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관계를 잃을 용기를 내야 하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신체를 소모할 용기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