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내 친구의 어린 시절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내 친구 중에서는 특히 유별난 친구가 하나 있다. 거의 20년을 알고 지낸 오랜 친구인데,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달랐다. 공부를 썩 잘해서 영재반에 들어가기도 했고, 그 어린 시절에 프로그램을 사용해 플래시를 만드는 등 컴퓨터에 관해 아는 것이 많았다. 뭐 여기까지만 말하면 특별까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그는 또래들처럼 뛰어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했고 게임도 곧잘 했으니까..
다만 그는 뭔가를 할 때 집요한 면이 있었다. 술래잡기를 해도 한 사람만을 쫓아가고, RPG 게임을 할 때도 포션을 아끼며 자연 회복을 추구했다. 또 그는 나처럼 그림과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는 확실히 나와 다른 어떤 창의적인 면이 있었다. 그림체도 뛰어났지만 만화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했던 것을 기억한다.또 그의 성격적인 부분이 되게 색달랐었다. 그는 곧잘 삐지기도 했지만, 충분히 화낼만한 일을 울분을 참고 녹이기도 했으며, 뭔가 그 편안하고 오묘한 느낌이 있었다.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데미안 같은 사람이지만 좀 더 진중하고 내향적인 데미안이랄까?
여하튼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집을 내 집 드나들듯이 하며 살았기에, 그 집이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독립적이고 자연적인 환경. 그의 부모님들은 차분하고 온순해 보이셨으며 자식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많은 간섭이나 통제, 호통 따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묶어두고 보호하지 않고 방목하는 느낌이랄까..
계기
사진 출처 : freepik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그가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갈 일이 있었고 볼일을 마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아뿔싸! 차비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비상콜로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며 상황을 설명했지만, 다들 일이 있다며 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가족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알아서 와라고 했다는 점이었다. 친구는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굴리며어찌할 바를 몰라했는데 말이다.
결국 그는 집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거의 10km가 넘는 먼 거리였지만 표지판을 들여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갔고, 비록 몇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집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이 일을 통해서 독립심이 생겼으며, 그 어린 시절에 '내가 하려면 뭐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중학생 때는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그는 우수한 성적을 받았었는데, 갑자기 입시를 위한 공부가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삶에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는 자퇴를 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남들 다 가는 대로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 루틴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고픈 걸 찾아다니며 움직였고 내가 볼 때 결코 빈둥거리거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물론 학교를 일찍 중퇴하여 남들에 비해 또래 친구가 많이 없는 점을 안타까이 느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삶은 행복해 보인다. 그는 현재 서울에서 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독립심
사진 출처 : 우리학교
우리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부모님은 앞서 말한 내 친구의 부모님과는 달랐다. 특히 아버지가 그랬다. 엄하고 호통이 잦았고 통제적이었다. 가족을 챙기고 함께 하기를 좋아하셨으나, 특유의 강인함과 가부장적인 태도는 성장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주눅 들고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울타리 너머 자유로이 나다니는 양이 되지 못한 것이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울타리 안에서 착하고 얌전히 생활하며 주는 풀만 먹고 사는 착실한 양이었다.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성장기를 거치며 조용한 아이가 되었던 것 같다. 의견 표출을 잘 못하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은 학생. 물론 나의 문제도 있었겠지만(왜소한 몸과 내향적 성격) 가정에서 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결국 나는 독립심이 그리 빨리 길러지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그 친구에 비해 생각해보면 나는 늦게서야 독립심과 자존감이 형성된 듯하다. 만약 앞서 얘기한 친구의 경우가 나의 경우였다면. 아마 우리 아버지는 꼼짝 말고 딱 기다리라고 하시고는 곧장 데리러 오셨을 것이다. 부드러운 친구 부모님의 사고는 강인한 친구를 만들었고, 강하고 통제적인 나의 아버지는 도리어 약한 나를 만들었다. 강한 것은 꺾이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남는다 했던가.. 역시 어디든 그 중간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