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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Apr 23. 2023

28살의 일기

외롭고 막막하지만 지금이 좋다

막연함

 며칠 전, 복싱장에서 한 40대 회원님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찌저찌 얘기가 흘러가다가 요즘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내가 어릴 때는 20대 후반쯤 되면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돈 벌면서 뭔가 갖추어진 상태로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지금 28살이 돼 보니 뭐가 딱히 없다고 말했다(물론 이 나이가 되기까지 내가 이런 상태인 것은 모두 나의 책임이다). 그러자 그분은 살짝 웃으시더니 이런 말을 하셨다. "좀 암울한 이야기이긴 한데, 40대가 돼도 뭐 딱히 없어요." 사람은 모두 느끼는 게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인즉슨, 누구나 자신의 현재 상황보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20대 후반인 나의 입장에서는 40대에 결혼해서 부인도 있고, 집도 있고, 개인 일을 하는 회원님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그 회원님은 자신의 삶을 딱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시지 않는 것이다(물론 겸손의 말일 수도 있다). 이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뒤, 또 다른 40대 회원님은 나에게 꿈이 있냐고 물었다. 꿈이라.. 언제부턴가 누군가 내게 꿈을 물을 때면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분명하고 싶은 것들은 있지만, 막상 그것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내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막연한 꿈에, 막연한 계획.. 내 대답에는 이렇다 할 무게가 없는 것이다. 그분은 40대인 자신의 입장에서는 20대인 내가 부럽고, 분명 또 다른 60대는 '아 내가 저렇게 젊었다면 뭐라도 했을 텐데..' 라며 40대인 자신을 부러워할 것이라 말했다. 젊음이라는 기회와 순간을 잘 사용하라는 뜻이었다.




확실함

 초중고를 거쳐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을 졸업하니 어느덧 내 나이 27.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나는 28살이 되었다. 훗날 내가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나는 내 28살의 봄날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외롭고, 막막했으며, 자유롭고, 희망찼지만, 불안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내 힘으로 돈을 벌고, 내 방식대로 살 수 있기에, 나는 자유로운 지금이 좋다. 하지만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기 직전이라 30이 되고도 내가 뭔가를 명확히 시작하고 있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또한 크다. 아직 내가 무엇을 밀고 나가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확한 방향성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외롭다. 이 따스한 봄날에 함께 좋은 곳을 구경할 연인이 없다는 것은 꽤나 고통스럽다. 모든 것이 지금 당장 내 인생 앞에 닥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달려가고 싶은 일을 찾고, 그러면서도 돈을 꾸준히 벌어 모으고, 계획했던 일들을 시작하고, 몸을 만들고, 사랑을 주고받을 연인을 구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막연히 변화를 꿈꾸며 움직였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느낀다. 지금보다 더 바뀌고 나아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내 아버지는 아들놈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은 안 하고 학과에 상관없는 알바나 하고 있으니 아주 골치 아픈 수준을 넘어 밤에 잠도 안 올 지경이라고 한다. 물론 아버지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내일모레 30인 아들이 그러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대학에서 열심히 했지만 확고한 직업에 대한 열정이나 흥미를 못 찾았고, 다른 꿈도 생겼다), 돈도 버는 중이다. 물론 내가 구체적 계획이 없기에 그래서 정확한 꿈을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미래를 그려내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는 혈기왕성함과 폭발하는 성욕을 억누른 채 강제로 교실에 앉아 잘하지도 못하는 시험공부를 반강제적으로 했어야 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혈기왕성함이 있으며 마찬가지로 높은 성욕을 보유한 채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선생이나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학생 때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 나는 자유롭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일들은 내가 하고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환경과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 속에서  나는 더욱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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