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달 뒤면 2024년,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하루하루는 느리게만 가는데, 길게 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혼자 살게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달력을 보니 벌써 독립한 지 7개월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체감상 시간이 빨리 간다는 사실은 정답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먹고살기 위해서 또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책임이 늘어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꾸준히 움직여야 하고 또 그런 하루하루가 꾸준히 반복되다 보니 체감상 여유롭고 잉여시간이 많았던 학창 시절이나 성인초창기에 비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와 별개로, 사람이 마음이 괴롭거나 몸이 힘들면 시간이 그만큼 안 가는 것 같다. 군대에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규칙적인 생활에 규직적인 일과 운동을 했음에도 2년 가까웠던 시간이 참 느리게도 흘러갔었다. 그것은 아마 잦은 육체노동으로 인한 몸의 피로와 매일같이 겪게 되는 선후임간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복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파링을 하거나 시합을 하게 되면 2분이라는 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안 지나 간다. 나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상대와 주변의 고함소리와 눈초리, 두려움과 각종 스트레스 상황들 속에서 몸과 마음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복근운동인 플랭크를 1분만 해봐도 시간이 얼마나 안 가는지 느껴볼 수 있다. 물론 무슨 상황 무슨 일을 하든 그것에 익숙해지고 또 그것에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며, 혹 그 시간이 길더라도 몸과 마음이 절대 초조하거나 두렵지 않을 것이다.
시합
내년이 오기까지 2달 남짓한 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2가지나 생겼다. 하나는 약 3주 뒤에 있을 생활체육복싱대회에 출전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잡을 끝내고 내년에 어떤 일과 어떤 길을 걸을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히 1년 만에 생활체육복싱대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가게 되었는데(시합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100% 자의로 나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지난번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75kg가 아닌 -80kg로 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평균체중이 78kg 정도가 되었고 그래서 평상시 컨디션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따로 살을 빼지 않고 그대로 나가기로 하게 된 것이다(물론 이 정도까지 힘들게 살을 찌웠는데 다시 빼기가 싫은 것도 있다).
그동안 운동도 하고 복싱을 대단히 열심히는 아니지만 꾸준히 하기는 했으니 분명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역시 두려운 것은 내가 한 체급이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75kg대에 얼마나 큰 사람들이 많은지 봐왔기 때문에, -80kg는 분명히 헉 소리 날정도로 한 덩치 하는 사람들이 올라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그 이전에 동물이기 때문에, 나보다 덩치가 훨씬 큰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랬고 이번 역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출전하기로 했다. 애초에 내가 동체급에서 덩치가 작은 편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내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힘이 아닌 기본기에서 나오는 스탭과 기술로 우위를 점하는 것, 그것뿐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직시하고 부딪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대의 주먹을 맞지 않고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로
약 1년간 투잡을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정말로 피로하고 힘들다는 것이다.공교롭게도 두 일이 모두 몸을 쓰는 일이고 또 바빴기 때문도 있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한 가지 일이 끝나면 바로 가서 다음 일을 해야 했기 때문도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그래도 견디고 있지만, 처음에는 정말 몸과 머리와 눈이 피로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상태로 정신줄을 간신히 잡고 일했었다(그런 상태에서 마치고 운동까지 하고 집으로 왔으니 나도 참 대단한 것 같다). 특히 한창 피곤할 때는 심장이 뭔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종종 들었었는데, 사람이 12시간 이상 일하면 심혈관질환 위험이 온다는 말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다행히도 투잡을 매일 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한 번씩 아침 일찍 일을 할 때면 장이 쓰린느낌을 받는데, 사람이 잠이 부족하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말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 또한 몸소 깨달았다. 일을 마치고 운동을 마치고 집에 와서 뭘 먹고 잠깐 쉬다 보면 12시가 훌쩍 넘어있어 다음날 7시에 일어나야 하는 나는 평균 수면시간이 6시간밖에 안된다.
6시간을 자고 13시간의 근무를 버틴다는 것은 아주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일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보다 더 심한 일을 버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적어도 나란 사람은 이렇게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남들처럼 공부하고 대학 나와서 취직하고 사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그 일이 좋아서 시작한 경우는 당연히 드물겠지만, 그래도 나는 어떤 일을 하던 그냥 먹고살기 위해 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일을 하고 싶다. 그걸 아직 찾지 못해서 일단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가며 사는 것 같다. 내년에는 마음에 내키는 일을 찾아, 한 길을 걸어가 보고 싶다.
학창 시절, 진로희망 칸을 채우는 일이 참 힘들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