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0)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는 감정이 사그라들고 “무엇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정성을 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로 귀결되는 것이 우울증이다. 나는 조울증 환자이지만 현재는 우울에 가까운 상태다. 나는 지난 5년 전 일기에서 반드시 성공이 있어야만 한다, 라는 글을 적은 적이 있다. 다음은 그 일기 전문이다.
“회사 생활, 아무리 열심히 해도 3년부터 고비가 온다. 내가 그럼에도 생활에서 자유로우려면, 3년 안에는 공모전 입상 및 사업 당선으로 작가로서의 성공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당선금은 모두 저축해두고,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그만둘 경우에 대비한 안전자금과 다른 안전지대가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실제로 고비는 찾아왔고, 안전지대라 할 수 있는 나의 연인을 만났다. 연인에게 의존하고 싶지는 않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질문을 해보자면, ‘성공’이란 무엇이고 나는 반드시 ‘성공’ 해야만 하는가? 아니, 지금 이미 ‘성공’해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에 이르러 ‘애써왔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 생존자’라는 찬사를 듣게 되었다.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나에겐 나의 삶에 대한 찬사나 다름 없는 말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때때로 산책을 하면서 나비를 만나면 반가워하는 것만으로 나는 이미 성공하지 않았나.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엄마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라는 말은 껍데기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 글을 써 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나라도 나 자신에게 나의 생각을 속삭여주기 위해,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을 암호를 배설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는 나에게 기꺼이 헌사 하는 나만의 봉사 같은 것이었다.
나는 착각한 것이다. 나의 글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둥,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한 것이었다는 둥, 어머니가 사라졌으니 나의 글은 돛을 잃은 배라는 생각은 틀렸다. 나는 나를 향한 애정을 잃은 것에 불과하다. 오직 나만을 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정직하게 성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과를 운운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우연하게도 결과가 좋았다.
나의 연인은 자신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 나도 그런 점을 본받고 싶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는 충분히 그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오직 나만을 위해 써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행복, 나에 대한 위로, 나를 위한 재미로 글이 쓰여져야 한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가? 무언가 들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오직 나만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니, 그리고 내가 그에 대한 재능도 가지고 있다니, 그리고 이미 그 재능에 대해 알아봐주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나는 나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용서해야 한다. 나를 응원해야 한다.
36시간을 침대에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채로 내가 또 다시 연인의 퇴근을 맞이한다하여도, 오직 나만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누군가의 애정을 배신하지 않게 된다. 나는 누구도 배신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이제껏 살아숨쉬느라 애쓴 나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